사사기에는 익숙한 반복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방 민족의 손에 넘기십니다. 고통을 견디지 못한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범죄가 있고, 고난이 있고, 부르짖음이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사사기 13장에 이르면 이 익숙한 흐름에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그 기간이 무려 40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40년 동안 블레셋에 눌려 살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블레셋의 압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압제에 너무 익숙해져 그것을 벗어나야 할 현실로조차 여기지 않게 된 것입니다. 신앙의 가장 위험한 순간은 넘어졌을 때가 아니라, 넘어져 있으면서도 일어날 생각마저 없어질 때입니다. 죄보다 더 두려운 것은 죄가 더 이상 불편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먼저 이스라엘을 찾아오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소라 땅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났습니다. 임신하지 못하던 여인에게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사사를 보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마노아의 가정이 민족을 구원할 아들을 달라고 간구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아무도 구원자를 구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원자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손을 내밀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손을 내미셨습니다. 삼손의 출생은 이스라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기 전에 하나님의 긍휼에서 시작된 구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준비된 삼손의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는 태에서부터 하나님께 구별된 나실인이었지만 자기 눈에 좋은 것을 좇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특별하게 구별해 부르셨지만 삼손 역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던 그 시대의 모습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눈에 옳은 것을 선택했고, 결국 그 선택은 그의 두 눈과 자유와 힘마저 앗아갔습니다. 자기 눈에 옳은 것을 좇던 사람은 결국 두 눈을 잃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힌 삼손은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애 마지막 순간, 삼손이 하나님을 부릅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삼손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놀라운 반전을 이룹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삼손을 찾아오셨습니다.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잃은 삼손이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의 인생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작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로 끝납니다.
물론 삼손의 마지막 기도를 완전한 회개의 기도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의 기도에는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심도 남아 있었습니다. 삼손은 마지막 순간까지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 연약한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일까요? 삼손의 이야기를 붙들고 계셨던 분이 처음부터 삼손이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13장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시작하리라’ 이 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 한 사람에게 이스라엘의 구원을 완성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삼손을 통해 구원을 시작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삼손은 실패했지만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삼손의 순종은 불완전했지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삼손에게서 시작된 블레셋을 향한 구원의 역사는 사무엘과 다윗의 시대를 지나 계속됩니다. 그리고 성경의 역사는 마침내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온전히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들고 여기까지 온 것 같지만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붙들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고,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실패했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보다 먼저 시작하신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면 됩니다. 삼손이 마지막 순간에 불렀던 그 이름을 우리도 다시 부르면 됩니다. “주 여호와여, 나를 생각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기 전에 우리를 찾아오셨던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다시 부르는 그 이름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구원은 우리의 부르짖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김 숙 목사
<천안 석곡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