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병원에 한번도 입원해 보지 않았다고 하는 필자의 자랑은 이제는 더 이상 못하게 되었다. 하룻밤이지만 병원에 입원도 해보았고, 소소한 고장으로 병원에 정기적으로 또는 가끔 출입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만큼 건강 유지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어쨌든 점점 나이들면서 신체의 노화라고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약간의 불편함이 여기저기 생기는 것은 숨길 수 없다. 또 이것을 아닌 척할 필요도 없다. 미리미리 잘 점검하면서 급속한 노화를 방지하면서 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다면 아주 ‘땡큐’이지 않는가? 그런데 병원을 가끔 출입하면서 겪는 아쉬움, 안타까움, 때로는 속상함이 있긴 하다. 무엇이냐 하면 의사 선생님 중 환자를 마치 바이러스 감염자 취급하는 태도를 취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예 환자용 의자를 멀찍이 세팅해 놓고 절대 본인 앞으로 오지 못하게 하는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때로는 ‘이렇게 하려면 왜 의사가 되었어요?’라고 묻고 싶은 때도 있다. “물론 다는 아니니라”
만나는 의사 선생님 중 정반대의 태도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 선생님들도 꽤 있다. 환자로 하여금 본인 앞으로 다가오게 하고, 환자를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하고, 혈압도 직접 재주고, 이런 저런 말을 하면서 상담을 한다. 환자가 병원 의료진의 권위에 눌려 묻고 싶은 질문도 다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말 편안하게해 하고 싶은 이야기, 묻고 싶은 사항을 다 말하게 하는 최고의 진료법을 구사한다. 이 의사 선생님은 진짜 의사이시다. 혈액검사 등 각종 검사 결과의 수치에 나타난 상태만으로 병세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 대해 정량적(Quantitative) 진료와 함께 정성적(Qualitative) 진료를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환자의 마음도 치료하고 환자로 하여금 소망을 갖고 용기를 내게 한다. 이런 선생님은 진료가 기다려지고 진료실을 나올 때는 왠지 기분이 좋아지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의사 선생님은 목회자와 같은 마음과 자세를 가지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필자는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목회자인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는 목회자로서 어떠한가?’를 가끔 묻는다. ‘나는 목사로서 위의 의사로 친다면 과연 어느 유형일까?’ ‘나는 과연 성도 한 분 한 분을 진정성 있게 대하고 있는가?’ 돌아보고, 자문해보면 나 자신도 성도를 대하는 태도에서 너무 바쁠 때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에는 부족함과 아쉬움이 남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목사는 하나님 앞에 선 자인데 때로는 사람을 의식하는 경우, 사람보다 일을 우선해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상처받고 고통을 겪고 있는 성도들을 만났을지라도 마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목회자는 종이다. 물론 사람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종으로서, 청지기로서 온전히 감당해야 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보고 섬기는 섬김의 종이어야 한다. 이때 우리 목회자들에게 요청되는 것은 군림하거나 억압하는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아니라 목자의 심정, 아비의 심정으로 성도를 대하는 것이다. 성도들의 약함과 아픔에 공감하며 애통해 할 줄 아는 긍휼의 마음과 태도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오늘과 같은 시대에는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대인관계를 함양해야 할 것이다.
동역자인 교역자와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도 똑같다. 부끄럽지만 필자의 경험을 나누길 원한다. 담임목회 만24년중 절반 정도는 우리 성도님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거의 매일 공궤를 받았는데 전골같은 식사 메뉴가 항상 있었다. 그때마다 필자는 빠짐없이 언제나 분배를 맡았다. 국자로 전골의 음식을 나누는 서비스를 자원해 했다. 교직원들도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그때 그것 외에는 그분들을 위해 봉사한 것이 없었던 것 같은데 지나놓고 보니 그것이 교직원 공동체를 그렇게 화목하게 하고, 그분들과 담임목사 사이의 끈끈한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한 것 같다. 그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복되게 한 것으로 여겨진다.
김영철 목사
<월드비전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