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수 나훈아의 테스형이라는 가요가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엄청나게 회자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40세에서 70세에 이르기까지 약 30년간 아테네 시민의 정신 혁명을 위해 그의 생애를 바쳤다. 부패, 타락한 아테네 사람들의 양심과 신앙을 바로잡기 위하여 교만과 허영속에서 방황하는 청년들의 인성을 각성시키기 위해 그는 아테네 거리에 나가서 시민들과 대화하고 가르치고 질책하고 호소하고 계도하였다. 그러나 아테네의 어리석은 민중은 그를 법정에 고소했다. 그 소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정한 신들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을 끌어들이고 또 청년들을 부패, 타락시켰다. 그 죄는 마땅히 죽음에 해당한다.” 소크라테스는 “불신앙과 청년의 유혹”이라는 두 죄명에 의해 고소되었고 아테네 시민 5백 명으로 구성된 법정에서 두 차례의 투표 결과 소크라테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누가 소크라테스를 죽였는가. 아테네의 어리석은 시민이다. 민중은 사리사욕에 휩쓸리면 우중으로 전락한다. 인간은 군중심리에 사로잡히게 되면 iq80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역사의 어두운 반동 세력도 되고 역사의 밝은 개혁 세력도 된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했는가.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민중이었다. 민중의 질(質)이 문제다.
소크라테스를 죽였다는 것은 진리를 죽인 것이요 정의를 죽인 것이다. 진리와 정의를 죽인 나라는 반드시 쇠망한다. 소크라테스가 처형된 지 61년 되는 해 기원전 338년에 아테네는 마케도니아에게 패망하고 말았다. 아테네는 역사의 심판과 징벌을 받았다. 역사는 반드시 준엄하게 심판한다.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 플라톤에게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누구나 인생을 바로 살기를 원한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첫째로 진실하게 사는 것이요 둘째로 아름답게 사는 것이요 셋째로 보람있게 사는 것이다. 거짓되고 추잡하게 살고 무의미하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바로’라는 말이 제일 중요하다. 말도 생각도 행동도 생활도 바로 해야 한다.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바로 하고 모든 것을 바로 해야 한다.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살아야 잘 살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또 외쳤다.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다.” 살다가 언제 죽더라도 태연자약하게 죽을 수 있는 확고부동한 사생관을 확립하고 조용하게 죽을 수 있는 정신적 신앙적 준비를 해야 한다. 에밀을 쓴 프랑스의 위대한 사상가요 철학자인 장 자크 루소의 말처럼 사색하고 농부처럼 일하여라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이다. 이 혼탁한 난세를 당당하게 살기 위하여 우리는 투철한 마음가짐을 다져야 한다. 믿음이 없는 세상은 공허하고 빈약하다. 우리는 지금 북한의 도발에 무감각해지고 사회 분위기는 6.25전쟁 이후 최고의 위기를 느끼고 있다. 미·중 사이에 신 냉전이 전개되고 정치, 경제 안보 등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2,500년 전 소크라테스는 지금 우리에게 그 위대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