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의 사전적 우리말 뜻은 “남에게 구걸하여 거저 얻어먹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기독교 역사에 보면 성직자들이 스스로 거지가 되어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12세기에 태어난 도미니크(Sanctus Dominicus, 1170-1221)와 프란시스(San Francesco d’Assisi, 1182-1226)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부유한 집안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을 남부럽지 않게 호의호식하며 자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도미니크와 프란시스는 집안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스스로도 거지처럼 살았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수도회를 계획적이거나 의도적으로 조직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신앙과 삶에 동의하는 제자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적으로 결성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수도원들과는 달리 일체의 건물이나 재산을 갖지 않았다. 도미니크와 프란시스는 세상 속에 들어가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사는 것이 수도생활이라고 믿었다. 이들은 모두 거지와 같이 옷을 입고, 거지가 되어 빌어먹었다.
나중에 도미니크 수도회는 학문 연구와 교육, 설교 등을 중시하게 되었고, 이를 복음 전파의 수단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이 수도원을 통하여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이 중세 스콜라 학파의 대표자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1274)이다. 반면에 프란시스 수도회는 말로 설교하는 것을 일체 거부하였다. 그들은 누구를 가르쳐서 전도하지 않았고 오로지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었다. 사람들과 같이 살고 같이 먹으며,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도와주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개하였다.
도미니크와 프란시스는 교황의 권위에 절대 복종하였다. 그들은 부와 권력을 한 몸에 누리는 교황을 욕하거나 거부하지 않았고, 세속화되고 썩어버린 교회에 대하여 비난하거나 회개하라고 외치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거지생활을 하며 살아갔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청빈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교회를 욕하고 비난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거지같은 생활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그들을 또 다른 면에서 보면 한없이 부자이고, 누릴 것을 다 누리는 위선자들일 뿐이다. 무슨 일만 생기면 교회와 동료 목사들을 싸잡아 욕을 하는 가짜 거지들의 목소리가 이젠 역겹다. 눈물로 한국교회를 위해 무릎 꿇고 기도하는 참된 거지 성직자들의 출현을 기대한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 • 강남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