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의 언어는 수어라는 것 정도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나 한국어가 제2외국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적은 것 같다. 수어는 농인들이 들리는 언어를 대신하는 보이는 언어이다. 마땅히 그들의 고유어로 대우 받고 이를 바탕으로 교육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농인들에게 말을 가르치려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의학적으로 볼 때 농인은 발성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며 단지 소리를 잘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발성하는 법을 가르치면 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정확한 발음을 발성한다는 것은 무엇을 듣고 따라할 때 자신의 목소리와 비교하고 수정을 거쳐 상대방의 목소리나 표준어에 가깝게 발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 발성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듣고 수정해 주며 정확하게 발음하도록 지도하고 가르치는 일은 간단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하면 또 불가능한 일도 아니기에 이러한 훈련을 잘 받은 사람은 농인인지 청인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음이 정확하기도 하다. 또 들을 수 없지만 상대방의 입술을 읽어 무슨 이야기를 하는 입모양인 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계속 훈련을 하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읽을 수도 있다. 이러한 방법을 독순법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상당한 훈련과 시간이 걸리기는 하여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발성을 하고 독순을 하는 교육을 구화교육이라고 하고 수어로 교육하는 것은 수어교육이라고 하며 양대 교육방법의 각자의 장점을 강조하며 상당 기간 교육계에 논쟁이 있어왔다. 1880년 밀라노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결정이지만 당시 교육자들이 모여 농아동의 사회 복귀를 위해서, 그리고 그에게 보다 완벽한 언어 지식을 주기 위해 “구화법은 수어법보다 우선 되어야 한다” 고 결의하였다.
이후 수어교육은 후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구어교육을 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여기저기에서 구화교육이 우수한 교육임을 강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농인이 공부를 하는 시간이 오히려 줄어들고 말을 배우는 시간이 늘어남과 동시에 정확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정신적 압박감만 가중되는 현상을 초래하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수어교육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학교가 갤로뎃대학교로 성장해 나갔으며 구어교육을 강조하는 단체는 전화기를 만든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지원으로 성장했다. 벨의 어머니가 농인이였지만 그의 어머니는 수어를 사용하지 않고 독순법으로 의사소통을 하였기에 벨은 음성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전화기를 발명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화의 발명은 휴대전화가 발명되어 문자가 전송되고 또 더 나아가 영상전화의 화면이 매끄럽게 전송되는 스마트 전화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오히려 농인들에게 청인들이 사용하는 것을 쳐다만 보아야 하는 그림의 떡이었다. 구화교육이 이론적으로 볼 때 말도 하고 상대방의 언어로 읽을 수 있는 좋은 교육같이 보이지만 구어를 구사한다고 하며 다 발음이 정확한 것도 아니며 또 상대방의 입술을 읽는다고 다 그 이야기를 해독 할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각 사람의 숙련도에 달려 있으며 상대방과 거리가 멀어진다든지 잠시 고개를 돌린다든지 하면 금방 필름이 끊어져 나가 스토리가 잘려 나가는 것 같은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상대방의 협조 또한 매우 중요하다. 망원렌즈로 상대방의 입술을 읽는 첩보 영화도 있지만 구어가 농인들에게 모두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에 이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안일남 장로
<영락농인교회·사단법인 영롱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