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博士/Ph. D)학위는 넥타이와 같다고 한다. 넥타이를 맨다고 더 따뜻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안 맨 것보다는 매는 게 더 멋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기 전(candidate)에 누가 미리 ‘박사’라고 불러주면 괜히 자격지심에 불안하고 황송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떤 이는 박사의 ‘박’ 자가 네 종류라고 한다. ①넓을 박(博) 자의 박사 ②묶을 박(縛) 자의 박사 ③얇을 박(薄) 자의 박사, ④두드릴 박(搏) 자의 박사가 그것이다. ①은 높고 깊은 학문과 연구 업적을 가진 (교수님/연구원)에 해당되고, ②는 속박하여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고 ③은 천박하고 부끄러운 가짜 인생이며 ④는 박살 내거나 타박상을 입히는 폭력 인사에 해당한다. 그러니 무턱대고 ‘박사’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며 모두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다. 가짜 박사일수록 더 박사라고 자랑하거나 드러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학문 활동과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박사’ 칭호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기업체 사장은 이익을 많이 내 국민경제에 공헌하면 그것이 박사인 것이고, 군인이면 무공을 크게 세우는 것이 박사인 셈이며, 목회자는 교회를 부흥시키고 교인들을 알뜰히 사랑하며 성경대로 모범을 보이면 그게 박사 이상의 명예일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재물에 대한 탐욕이나 이성에 대한 집착처럼 명예에 대한 욕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은 박사학위나 박사 호칭에 무관심하기 바란다. 어느 대통령도 박사학위를 드러내지 않으며 불교 승려나 가톨릭 사제들이 박사학위를 드러내지 않는 것을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설령 그들이 진짜 박사라 할지라도 그것을 앞세워 드러내지 않고 종교행사 때 입는 제의(祭儀)나 장삼(長衫)에 박사학위 표시를 하지 않는다.
이제 박사(博士)에 대한 어원적 고찰을 해 보겠다. 박사는 옛날 관직의 하나로서 교수의 임무를 맡아보던 벼슬이었다. 백제 때는 시(詩) 서(書) 역(易) 예기(禮記) 춘추(春秋)의 5경 박사를 뒀고, 고구려 때는 태학에, 신라 때는 국학에, 고려 때는 국자감에, 조선조 때는 성균관 홍문관, 규장각, 숭문원에 각각 박사를 두었다. 박사는 경박사(經博士), 역박사(曆博士) 등으로 불렸다. 박사는 원래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노(魯)와 송(宋)나라에서 두었던 관직(官職)이었다. 그 뒤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학식이 높고 고금의 사적에 두루 능통한 인물 72명을 뽑아 박사(博士)로 임명한 후 국정의 자문역으로 삼았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실시하면 좋겠다) 그러나 박사가 학관(學官) 즉 교육을 담당하는 관리로 임명된 것은 한(漢)나라 때부터다. 무제(武帝/B.C41-87년) 때 ‘대책(對策)’을 지어 바친 동중서(董仲舒/B.C179-104)가 승상이 되었는데 그는 유학을 중심으로 정사를 폈다. 동중서는 B.C 136년에 유학을 국교로 선포했고, B.C 124년에는 국립대학인 태학(太學)을 세웠으며 이때 오경(五經) 박사와 50명의 박사제자원을 설치했다. 따라서 ‘박사’란 말의 생성 시기는 B.C 124년쯤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만 진나라 때 전국(戰國)을 통일한 진시황이 제자백가 중 유능한 학자들 72명을 박사로 임명한 적이 있는데 이때의 박사는 일종의 명예직이었다.
오늘날 대통령은 대한민국 5.000만 국민 중 그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국정 수행에 의견을 요청할 수 있다. 또 우리나라엔 국내·외에서 연구, 수학한 고급 전문 인력이 얼마나 많은가? 국정은 대통령 개인이나 한 정당만의 업무가 아니다.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한 종합 행정이다. 분야별로 자문단이나 위원들을 위촉하고 상시운영하면 탁월한 의견과 방안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그 결론을 갖고 집행만 하면 될 것이다. 전 국민이 도와줄 수 있는데 왜 그걸 하지 못하는가? 국가 원로들과 각 종교단체 지도자들과 수시로 만나 의견도 듣고 고충도 말하고 소원도 표현하자. 공개적으로 함께 말하고 듣고 토론하고 협의하면 그 결과도 선·악 간 모든 국민이 같이 책임질 것 아닌가. 그러니 박사들을 활용하라.
김형태 박사
<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더드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