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 믿음의 유업 잘 지킬 때 복 받는 삶 될 것”
“먼저 저의 가정을 지금까지 믿음의 가문으로 지켜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임마누엘 하나님 앞에 큰 영광과 감사함을 올려드립니다.”
전국장로회연합회는 지난 11월 25일 명성교회에서 개최된 제50회기 정기총회에서 이대성 장로에게 4대 장로 표창을 수여했다. 증조부 시절부터 내려온 믿음의 줄기가 이 장로를 통해 손자, 손녀들에게까지 내려오고 있는 과정을 이대성 장로에게 들었다.
“저희 가문은 이북 평안남도 대동군 용산면 하구로리를 원적으로 두고 있다. 증조부 되시는 이재승(1861년생) 할아버지께서는 사시던 용악리에 1900년 용악리장로교회를 시작으로 1909년 사재를 들여 서양식 18칸 함석 건물로 예배당을 새로 지으셨다. 또한, 보광학교
를 교회 옆에 서구식 함석 건물로 새로이 짓고 스왈른이라는 미국 선교사를 교장으로 초빙하여 현재의 기독교 미션 스쿨을 세워 후학들을 키우셨다. 이러한 공적들로 군민들은 교회와 학교 사이에 공적비를 세워 돌아가신 증조부를 기렸다고 한다”며 4대 장로 가문의 시작인 증조부의 이야기를 전했다.
또한, “저희 조부 되시는 이봉연(1906년생) 할아버지는 부친의 대를 이어 교회를 잘 섬기시어 영수라는 직분을 받으셨고, 저의 외조부 되시는 서종삼(1900년생) 할아버지께서는 대동군 김제면 황학리교회를 섬기시며 1936년 장로로 세움받은 기록이 남겨져 있다”고
전했다.
이대성 장로는 “이봉연 할아버지와 서종삼 외할아버지의 연은 당시 한국장로신문사를 창단하신, 발행인 겸 제2대 사장을 지내신 김재호 장로님의 덕으로 양가가 사돈을 맺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대를 이어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며 본보와의 인연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저의 부친인 이원근(1929년생)은 어머니인 서태은과 1948년 20세에 결혼을 하셨고, 2년 후 6.25의 발발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1950년 12월 피난을 떠났습니다. 피난길에 대동강을 건너던 중 다리가 끊어지며 할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아버지께선 가장이 되어 어머니와 임신한 부인,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생면부지인 이남땅에서 모진 고생을 하며 고
난과 역경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버지는 가는 곳마다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렸으며, 성가대를 세워 풍금으로 반주를 하며 찬양대를 이끄시며 신앙심을 지키셨습니다. 이 가운데 1951년 음력 단오날 피난민촌에서 내가 태어났고, 시간이 지나 우리 가족은 동대문구 용두동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 장로는 “평양에 있던 동광교회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와 1948년 동대문구 용두동에 동광교회를 세웠고, 이곳에서 1954년경 나의 할머니 김확신 권사(1979년 작고)를 시작으로 나의 손자까지 5대를 섬기고 있다”며 계속하여 이어지고 있는 믿음의 유업을 이야기했다.
“우리 가문의 가훈은 ‘積善之家 必有餘慶’(적선지가 필 유 여경, 선한 일을 많이 하면 후손들에게까지 복을 받는다)이며, 오늘 나의 나 된 것은 다 믿음의 선조들께서 가훈을 잘 행하셔서 그 복을 우리 후손들이 받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저를 한국장로성가단 단장으로 세우시며 다각적으로 찬양으로 쓰임 받게 하심도 하나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가문의 후손들이 선조들의 믿음의 유업을 잘 지키며 섬기며 살아갈 때 가훈으로 자손만대의 이르기까지 복 받는 삶이 될 것을 확신하며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 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찬양으로 신앙 고백을 드립니다.”
/석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