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위량 순례단의 역사(32)
상주에서 안동까지(7)
배위량이 1893년 5월 3일 용궁에서 출발해 개포면을 거쳐 예천읍 외곽지역을 통과해 내성천 강가 마을인 호명면 월포리 서당마을에서 잠을 잔 후 4일 아침에 내성천과 신역천을 건너 풍산까지 가서 정오에 일기를 썼다고 보는 필자의 견해를 「한국장로신문」 제1813호에 이미 언급했다.
필자가 「한국장로신문」 제1813호에 언급한 노정 이외에도 3가지 노정을 통해 풍산으로 갈 수도 있다. 다음에 언급하는 노정을 필자는 직접 걸어 보기도 했고, 자동차로 지나가면서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다.
용궁면 용궁시장-회룡포마을을 거치지 않고 풍산으로 가는 노정
1 용궁면 용궁시장-개포면-예천읍 상동리-왕신리- 호명면 종산리-월포리 서당마을에서 잠을 잔 후 내성천을 건너 – 오천리-풍산
2. 용궁면-개포면 동송리에서 내성천을 건너서 호명면 본포리로 가는 길을 선택해 풍산으로 가는 길
3. 용궁면 -개포면 – 예천읍 상동리-왕신리-호명면 월포리에서 내성천을 건너- 호명면 직산2리를 거쳐 풍산으로 가는 길도 생각할 수 있다.
필자는 용궁면 용궁시장에서 회룡포마을을 거쳐 가는 길로도 걸어서 가 보았다. 이 경우에도 다시 위의 3가지 노정으로 다시 들어가서 걷거나 차로 이동할 수도 있다.
용궁면 용궁시장-회룡포마을을 거쳐 풍산으로 가는 노정
4.1 용궁면 용궁시장-회룡포마을-개포면-예천읍 상동리-왕신리- 호명면 종산리-월포리 서당마을에서 잠을 잔 후 내성천을 건너 – 오천리-풍산
4.2 용궁면 용궁시장-회룡포마을- 개포면 동송리에서 내성천을 건너서 호명면 본포리로 가는 길을 선택해 풍산
4.3 용궁면 용궁시장-회룡포마을 -개포면 – 예천읍 상동리-왕신리-호명면 월포리에서 내성천을 건너- 호명면 직산2리를 거쳐 풍산으로 가는 길
그런데 회룡포 마을은 그 당시 1893년에는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농촌 마을이었기에 배위량이 일부러 회룡포를 거쳐 풍산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회룡포 마을로 가는 나룻배가 있었으면 문제는 달라지겠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나루터가 강가 마을마다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회룡포 마을이 강가 마을이 아니기에 회룡포 마을로 가는 나루터는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더욱이 배위량이 용궁을 떠나 풍산을 향해 길을 떠난 5월 3일은 1일 밤부터 내린 비로 내성천 믈이 상당히 많이 불어 내성천을 건너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배위량은 회룡포 마을로 가는 내성천을 건너는 노정을 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위에 언급된 1-3노정을 따라서 용궁에서 풍산을 향해 갔을 것이다. 필자는 이미 1노정을 따라서 배위량이 용궁에서 풍산으로 갔을 개연성을 주장했다. 물론 1-3노정 중에서 1893년 당시에 내성천 어디 어디에 나루터가 있었는지가 중요하고 그것에 따라 배위량이 택한 노정이 결정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1893년 당시의 지리적인 상황을 더듬어 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런 자료를 얻지 못한 필자의 추정치일 따름이지만, 필자 나름의 분석에 따른 추정치로는 제1노정을 통해 배위량이 용궁에서 풍산으로 갔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렇지만, 2-3노정을 전혀 무시하기는 어렵다. 만약 그 당시에 1노정에는 나루터가 없었고 2노정이나 3노정 노상에 나루터가 있었다면 배위량이 2-3노정을 통해 풍산을 향해 갔을 개연성이 더 크다고 여겨진다. 만약 1-3노정 모두에 나루터가 있었다는 가정이 성립된다면 필자는 위에서 추정한 1노정을 통해 배위량이 용궁에서 풍산으로 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5월 1일부터 3일 정오까지 비가 내렸기에 4일 아침 일찍 물이 불은 내성천을 맨발로 건너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1노정에 나루터가 형성될 좋은 조건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노정에 나루터가 없고, 단지 2노정과 3노정에만 나루터가 있었다면, 1노정으로 통해 풍산으로 배위량이 들어갔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똑같은 조건이라면 1노정 상에 나루터가 있어야 할 지정적인 조건이 성립되기에 서당마을에 나루터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런 점에서 분석하자면 같은 조건이라면 1노정을 통해 배위량이 용궁에서 풍산을 향해 갔을 개연성이 가장 분명해 보인다.
3. 어제 예천 읍내를 왼편에 두고 지나왔다.
1. 지난 밤에 상주에서 100리 떨어진 강가의 작은 마을에서 잤다.
2. 오늘 아침에는 강을 두 번이나 건넜다. 땅이 비옥하고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을 지나왔다.
그것은 이미 필자가 「한국장로신문」 제1813호에 언급한 것처럼 위와 같은 배위량의 5월 4일 풍산에서 쓴 일기에 가장 근접한 노정이 1노정이기 때문이다.
만약 현시대 신자들이 순례자가 되어 시간이 넉넉한 노정으로 용궁에서 풍산을 향해 가자면 4노정을 통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4.1, 4.2, 4.3 모두 좋고 개포에서 예천읍으로 가서 예천교회 등 예천을 둘러보고 가면 인심 좋은 예천의 경치와 인심을 만끽하는 노정이 될 것이다.
필자는 늘 시간을 단축해 배위량의 제2차 순회전도 노정을 모두 걷고자 했기에 가급적 시간을 줄여야 했다. 그래서 회룡포에서 바로 개포를 거쳐 예천과 호명을 거쳐 풍산까지 가는 노정을 택했다. 그런데 영남신대 배위량순례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도보순례를 할 경우에 학생들은 잘 걷는 학생도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기에 용궁의 예천풍성한 교회에서 순례를 출발해 용궁시장을 거쳐 여유롭게 제1뿅뿅다리(경북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950)를 건너서 회룡포 마을로 가서 회룡포 마을을 돌아보고 개포를 거쳐 가는 노정으로 예천읍까지만 가서 예천교회에서 순례를 마치는 것으로 순례를 진행했다.
순례는 낭만도 있고 여유로움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낮 동안에 느끼는 감정이다. 낮에 누리는 낭만적인 순례길이 밤이 되면 어두움이 주는 공포와 조급함이 엄습한다. 순례현장에서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걸을 때에 처한 현실을 순례자만이 느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낮 동에는 밤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낮이 주는 축복만 생각한다면 밤을 대비하지 못하고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낮 동안은 온 세상이 환해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그러나 낮이 있는 곳에는 밤도 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인식하든 말든 밤에도 걸어야 한다. 밤은 사방이 어둡고 걷기가 힘들고 어렵다. 공포를 느끼게 되고 밤길에는 여러 가지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도 순례길을 걷는 사람은 밤에도 걸어가야 할 일이 많다. 그것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는 숙박이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밤길을 걷는 순례자에게 큰 위안이 된다. 오늘 밤 잘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이 있다. 그런데 밤길을 걷는데도 자신의 숙박지를 정하지 못한 상태라면 그 밤은 더 큰 공포가 된다. 그런 밤이 주는 공포를 알았기에 배위량은 매사에 무리를 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선용하고 조절했다. 그는 내성천을 건너면 호명면 소재지 마을로 들어가면 좀더 아늑한 잠자리를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것을 위해 어둠속에서 나루터를 찾아가서 나룻배를 타고 불어 위험한 내성천을 건너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호명면의 작은 변두리 마을인 외롭고 초라한 내성천의 강가 마을에서 그 밤에 유숙하고 이튿날 동트는 것을 보고 나룻배를 타고 내성천을 건너 호명을 거쳐 풍산으로 들어 간 것으로 보인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