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요한일서, 이서, 삼서, 요한계시록을 썼다. 첫째로, 요한복음은 전통적으로 사도 요한이 기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 자기 이름을 쓰지 않았으며 자신을 말할 때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라 했다. 요한복음 끝에서 그는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21:24)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라고 하였다.
사도 요한의 세 서신도 요한복음 못지않게 많이 읽힌다. 특히 요한일서는 그의 복음서에 자주 나오는 [사랑]이라는 어휘를 강조한 아름다운 어휘이다. 개혁개정판 한글성경 요한일서에는 “사랑”이란 어휘가 42회 나온다. 요한이서와 삼서는 성경에서 가장 짧은 책이다.
그중에서 성도들이 가장 좋아하는 글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요 3:2)이다. 이것은 사도 요한의 사랑의 축복이었다. 사도 요한의 기록들은 기독교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사도 요한이 남긴 글들은 지금까지 가장 큰 복음의 영향을 지니고 있다.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 있을 때 여러 문제들 중에서 중요한 것은 이단이었다. 성도들이 이단에 유혹되어 넘어가고 있었다.
먼저 영지주의(靈智主義)라는 노스틱주의(Gnosticism)이다. 영지주의는 예수님이 영으로 오신 분으로 믿으며 육신을 입고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와서 사신 것을 부인한다. 진정한 지식은 오직 계몽된 중개자들을 통하여 얻어질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이단에 대하여 적절한 복음을 제시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서 곧 요한복음을 기록하게 되었다.
초기 교회 역사에서 영과 육체,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영지주의자들이 가장 선호한 복음서가 요한복음이다. 그러나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강조하는 요한의 신학 세계는 영지주의자들의 극단적인 이원론과는 조화될 수 없었을 뿐더러 그들의 그릇된 신학과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사도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한 것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고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셨음을 기록하였다.
노스틱주의(Gnosticism)란 지식을 뜻하는 헬라어 그노시스(gnosis)라는 말에서 왔다.
다음 이단은 유대주의(Judaism)였다. 영지주의와 어울려 이교적인 운동을 하던 유대주의는 초대 기독교에 큰 방해가 되었다. 초기 예루살렘에서 교회에 대하여 음흉한 행동을 취하였다. 예루살렘 회의가 유대주의를 진정시켰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 후에도 여러 해를 두고 유대주의 경향이 있었다.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도 이들은 유대 기독교인들로서 유대인의 전통은 그대로 계승하며 기독교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