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리더] K-컬쳐 원조 기산(箕山), <천로역정>에 흠뻑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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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箕山) 선생은 국내 최초 출판된《텬료력뎡》의 삽화를 그려 냈다. 원전《천로역정(天路歷程,ThePilgrim’s Progress)》은 영국의 청교도 작가 존 번연(1628∼1688)의 소설로 1678년 초판이 나왔다. 꿈의 형식을 빌어 이야기를 풀어낸 책으로 ‘기독도’이라는 남자가 ‘멸망할 도시(장망성)’를 떠나 ‘시온성(천성)’을 향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 크리스천이 인생의 여정에서 욕망과 싸우며 사탄의 도전 앞에서 거룩함을 이뤄간다는 이야기로 구원과 성화의 여정을 잘 보여준다. 국내에서 1895년 첫 출판된《텬료력뎡》은 장로교 제임스 스카스 게일(한국명 기일·1863~1937) 선교사와 부인 깁슨이 공동 번역했다. 그들은 한국 문화의 진수를 간파해 이를 서양에 소개하고, 토착적 기독교를 한국에 심어주기 위해 애썼던 선교사였다. 이 책을 읽으며 책에 흠뻑 빠진 기산은 총 42장의 삽화로 당대 풍속화가 기산(箕山)풍속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특히 책에서 보여주는 ‘기독도를 인도하시는 그리스도’는 세계 최초의 갓 쓴 예수님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 장면은 외래종교인 기독교를 주체적으로 수용해 토착적인 전통을 반영한 한국 개신교 미술의 효시로 평가받으며, 다원이 삽화를 그린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와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과 함께 한국의 3대 미서(美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텬료력뎡》초판본은 상‧하 2책으로 나눠 목판으로 인쇄하였으며 미려한 한지를 사용하여 한 장 제본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한글로 번역된《텬료력뎡》은 장대현교회 길선주(1869~1935) 목사가 읽고 감명을 받음으로써 1907년 평양 대부흥을 이끌어 낸 원동력이 됐다. 

최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이 소장한 김준근 풍속화 총 79점이 최근 코로나19를 뚫고 한국에 들어 왔는데, 이것을 접한다는 것은 미술애호가 만이 아니라 크리스천에게도 즐거운 일이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10월 5일까지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라는 특별전을 열어 대중을 만나고 있다. 기산(箕山) 특별전을 통해 세계문학사의 불후의 명작으로, 또한 한국기독교 신앙 초기에 큰 영향을 미쳤을《텬료력뎡》과 기독교 문화개척에 일생을 바친 게일 선교사와 김준근 화백에 대한 관심과 재평가가 필요해 보인다. 기산(箕山) 선생의 작품 중《천로역정》은 개화기 번역문학의 효시로 국문학사적으로도 당시 한글 보급과 한글문체를 보여주는 중요한 책이다. 최초로 번역된 《텬료력뎡》초판본은 현대식 인쇄출판을 통해 초기 대중에게 복음을 전하는 통로로 사용되었고 한국의 기독교 신앙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 문화재 685호에 등재된《텬료력뎡》초판본은 한국 기독교 복음전파와 책의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희귀본으로, 철저한 연구와 고증이 필요하다.《텬료력뎡》출판 당시는 기독교신앙이 한국에 상륙한 당시 19세기의 한국은 열강의 간섭에 국기가 흔들리고 부패와 혼란이 극도에 달하여 생활이 참으로 어려웠던 때다. 그러한 시대에 오늘의 고통과 유혹을 이겨내고 구원의 길을 걸어가 내세의 행복을 접하게 되는 ‘천로역정’의 이야기가 이 땅에 소개된 것이다. 

이효상 목사

·근대문화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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