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500여 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에 마르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95개조로 된 대자보를 게시함으로 우리가 주지하는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교황청의 치리 아래 유지되었던 기독교는 시대가 흐르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인 변혁으로 지적인 변화가 생겼음에도 이에 부응하지 못했고, 오래된 교황청 내부의 부정에 항거하는 일반 신도들의 분산된 분노가 축적되다가, 면죄부를 구입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신앙을 넘어 도덕적인 타락으로까지 퍼진 죄악에 드디어 커다란 저항에 부딪쳤다. 사실 당시에는 베드로의 후계자라 칭하는 교황의 권위에 항거한다는 사실은 목숨을 거는 엄청난 사실임에도 이에 대한 개혁운동은 즈빙글리나 존 칼뱅을 이어가며 성공을 거두면서 기독교는 크게는 개신교와 천주교로 양분되었다.
천주교는 대략 3백여 년 전에 서학의 형식으로 조선으로 전파되어 처음에는 자생적으로 생겨났으나, 무조건 서학을 배척하는 봉건적인 사상에 막혀 박해를 받으면서 초창기에는 순교자도 많이 배출하는 희생을 치렀다. 그러나 개신교는 대략 140여 년 전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와 척박한 땅에서 선교의 씨를 뿌렸고,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큰 열매를 맺게 되었다. 다행히 이런 초창기 선교시절에는 과거 천주교가 받았던 핍박은 사라지고, 오히려 교육과 의료시설을 제공하는 선교사들과 함께 선교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특히 1907년에 있었던 평양 대 부흥을 계기로 선교의 기치를 올렸고, 이는 3·1운동에도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어 이 민족을 이끄는 도화선이 되었으며, 물론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참배로 인한 희생도 있었지만, 이런 난국을 잘 헤쳐 나갈 수가 있었다.
해방이 되고 곧 이어 닥친 6·25의 시련은 우리들에게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는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기에 내리시는 시련으로 알고 이를 잘 극복하였고, 이후에 미국을 비롯한 우방의 도움으로 재건하고 새롭게 건설하는 역량을 쌓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선교사들의 사역에서 가르침을 받아 명실공히 하나님의 확실한 자녀로 거듭나면서, 우리에게 명하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말씀을 그대로 따르는 백성이 되었다. 그러면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된 것은 물론 선교를 하는 나라가 되어, 이제는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견하는 국가로 성장하였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도 건립하고 제일 부흥한 기독교 국가로 칭송을 받게 되었다. 당연하게 외적인 성장을 하였으나, 근래에는 우리 기독교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눈길이 존경이나 따뜻함을 떠나, 경원하고 때로는 멸시하는 시선이 느껴지기도 한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사회에서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하는 현실이 되었다. 500년 전에 용감하게 잘못을 힐난하고 회개를 외치던 종교개혁자들의 음성이 들리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천주교나 불교 심지어는 이슬람교를 비난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 행동을 하는 일이 우선 선행되어야 한다. 남에게 보여주는 억지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참된 신앙인이 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종교개혁이리라.
백형설 장로<연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