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Paul)이라고 하는 한 회사원이 뉴욕에서 중요한 미팅을 마치고 자기 팀 동료와 함께 공항으로 가려고 거리로 나왔다. 그런데 그 날이 금요일 오후 저녁시간이어서 교통체증이 심해 택시 잡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정말 기적적으로 빈 택시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 택시를 보는 순간 동료들이 쏜살같이 달려가서 그 택시를 잡아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너무 빨리 달려가는 바람에 바로 길가에서 장사하고 있는 노점상의 야채 과일 박스를 발로 차버리게 됐고, 과일과 야채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폴의 일행 중 어느 누구도 이를 개의치 않고 택시에 올라탔다.
그러나 폴은 택시를 타지 않고 그 자리에 한순간 멈추어 서 있었다. 택시 안의 동료들이 외쳤다. “빨리 타라구!” 그리고 덧붙이기를, “이 택시 타지 않으면 비행기 놓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은 자신을 놔두고 먼저 가라고 일행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나서 노점상 할머니에게 다가가니 그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자였다. 눈이 성한 사람이라면 바닥에 흩어진 물건을 주우면 그만인데,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가 어떻게 그 과일과 야채를 주워 담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앉아서 울고 있던 할머니를 폴이 위로해 드리면서 땅바닥에 떨어진 야채와 과일을 하나씩 줍기 시작했다.
이때 그들 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다들 자기 갈 길이 바빠서인지 아무도 노점상 시각장애인 할머니의 울음소리와 폴의 행동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폴이 야채와 과일을 다 정돈한 후에 지갑에서 돈을 꺼내 할머니 손에 쥐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이 돈이면 손해 보신 것 충분히 해결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가 이렇게 물었다. “Are you JESUS?(혹시 예수님이신가요?)” 이 말을 들고 당황한 폴이 “나는 절대로 예수가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 시각장애인 할머니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조금 전, 노점 가판대가 넘어지고 과일과 야채가 땅에 떨어질 때, 제가 도움을 요청할 분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JESUS, please come help me.(예수님 나에게 다가오셔서 제발 나를 도와주십시오.) 그랬는데 기도의 응답처럼 당신이 와서 나를 도와주었으니까요. You must be JESUS. (당신은 예수님이 틀림없습니다.)”
그날 밤 폴은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하룻밤을 더 뉴욕 호텔에서 머물면서 한밤중에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When was the last time someone confused you for JESUS?”(누군가 당신을 예수님으로 착각하게 했을 때가 언제였나?)
이 시대는 코로나19로 마음이 심란하고 울적한 시기이다. 이 시간 가슴에 손을 얹고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는 정말 작은 예수가 맞나?” “나의 삶의 방향과 목적은 올바른가?”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서 길게 줄을 늘어선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돈도 능력도 재능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작은 예수’가 될 때만이 가능하다. 나의 필요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고 기꺼이 양보할 수 있다면! 만일 내가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할 수만 있다면! 만일 내가 예수님처럼 나를 희생함으로 누군가를 세우고 살려줄 수만 있다면! 그러면 분명 나 한 사람으로 인해서 이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 분명할 텐데 말이다.
이 글은 가까운 친구인 감리교단의 은퇴목사가 보내준 내용이다. 이 글이 어쩌면 실화(實話)가 아니고 픽션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울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밝은 소식이므로 우리가 그 내용을 읽고 음미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나는 초등학교 4-5-6학년 3년 간, 한국전쟁을 겪었고 피난을 다니면서 폭격현장에서도 살아남았으며 그런 와중에 아직 젊었던 우리 엄마를 잃기도 하였다. 내가 전쟁 중에 경험했던 울적하고 심란한 분위기가 요즈음 코로나 상황 속에서 감지될 때가 있다. 이런 때일수록 하늘이 주시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묵상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하겠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