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일곱 교회에 부탁하시는 말씀은 두 가지였는데 ‘진실’과 ‘충성’이었다. 구원의 진리를 진실하고 충성되게 믿고 살 때, 하나님이 그에게 영광스러운 나라와 영생을 주신다. 그러나 이 진리를 가볍게 여기는 자들은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다고 경고했다. 계시록 6장에서 18장까지는 이 구원의 진리를 경하게 여긴 자들이 심판을 받을 것을 설명했다. 19장 이후에는 구원의 진리를 믿고 그 진리에 죽도록 충성한 자들이 받을 상급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진리를 굳게 잡은 성도들을 위로하고 축복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백마를 타시고 수천 수백만의 천사들과 함께 이 땅에 오신다.
구원 받은 자들은 질병도 저주도 고통이나 눈물이 없는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함이다(계 7:17, 21:4). 사도 요한은 이 경이적인 기쁨과 소망을 환상 가운데서 보았다. 주님께서 곧 오시리라고 약속하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라고 요한이 말하면서 계시록이 끝나게 된다. 주님이 오시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에게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을 받으면 영원한 나라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살게 된다.(마 25:21)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전 인류가 가야 할 방향과 목적,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이 제시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사도 요한은 주후 96년에 에베소로 돌아왔다. 그는 이제 노쇠하여 부축해 주어야 걸을 수 있었다. 성도들은 사도 요한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깊은 신앙의 말씀을 듣고 싶은 사람들이 에베소에는 많았다. 에베소의 원형극장에는 아이로부터 노인까지 자리가 꽉 찼다.
에베소 대 원형극장은 66층의 계단식 좌석에 24,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게 설계된 대규모 노천극장이었다. 이 극장은 작은 발자국 소리가 멀리까지 잘 들리도록 설계된 대규모의 극장이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아데미를 조각해 팔던 데메드리오와 은 세공자들의 폭동으로 마게도냐로 갔다.(행 19:23-20:1) 복음을 전하던 사도 바울이 쫓겨났던 이곳에 사도 요한의 음성을 들으러 사람들이 모였다. 남루한 거지, 병든 노인, 많은 환자, 옛날엔 연극을 보러 여길 찾았던 에베소의 부자들… 환자들이었다.
‘로고스’란 어휘를 제일 먼저 쓴 사람은 에베소 시민인 헤리클레투스였다. 로고스는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모든 법칙의 근원이며 영원한 진리이다. 요한은 ‘로고스’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요 1:1)라고 서두를 떼자 소란하던 군중들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그들은 에베소 철학의 자랑인 로고스를 알고 있었다.
사도 요한은 거동이 불편하므로 부축을 받으며 강단에 올라가 의자에 앉아서 성도들에게 설교했다. “주님의 어린 형제들이여! 서로 사랑하시오”라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내려왔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으니 사도는 “당신들이 서로 사랑할 수만 있다면 다른 것은 더 필요 없을 것이기 때문이오”라고 했다.
사도 요한을 ‘사랑의 사도’라고 한다. 그는 예수님에게서 사랑을 배웠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4-35) 요한은 예수님의 새 계명을 소개하면서 자신이 그 계명을 실천했으며 모든 성도들에게 가르쳤다. 그가 쓴 성경 5권에서 <사랑>이란 어휘가 요한복음에 56회, 요한 일서에 44회, 요한 이서에 4회, 요한 삼서에 6회, 요한계시록에 3회로서 총 114회인데 <아가페>가 102회, <필로스>가 12회이다. 성경 안에 ‘에로스’란 어휘는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랑이란 어휘를 사용하면서 그는 사랑했으며 사랑을 위해 살았다. 사도 요한이 실천한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였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