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러나 올해도 말뿐인 사랑이요 형식뿐인 성탄맞이가 될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동방박사들처럼 몇 개월이 걸려도 어떤 희생도 감수하며 기어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 경배하고야 말겠다는 예배의 정성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우리 쓸 것은 항상 풍족하나 아기 예수님께 드릴 예물은 언제나 부족하여 거의 빈손인 채 주님 앞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는 하늘의 음성을 듣고 까무러칠 듯 기뻐하며 하던 일도 멈추고 환희에 벅차서 단숨에 아기 예수님 계신 곳으로 달려 왔던 목자들의 그 흥분과 감격과 희열이 우리의 성탄절에는 없어서 그저 썰렁하기만 합니다. 84년을 청상과부로 살아오다가 아기 예수 한 번 안아보고 평생의 고난을 다 보상받은 듯 한없이 기뻐하고 울었던 안나 할머니의 한(恨)풀이 같은 믿음도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평생 메시아를 기다리며 고대하다가 아기 예수님 한 번 뵈옵고 “이제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였던 시므온의 언어가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합니다. 심지어는 오늘날에도 아기 예수님 모실 빈 방 하나가 없어서 또 마구간으로 모셔야 하는, 주님께는 그리도 인색하고 가난한 우리의 모습에 낯이 뜨거워집니다.
아기 예수님, 감히 오시라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환영한다고 말할 면목이 없습니다. 정성이 없고 최선을 다하지 못한 성탄맞이가 되어버렸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평화의 왕이 오시는데 우리에게 평화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우리 가정에도, 이 사회에도 그리고 국가 간의 관계에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주님이 거하실 교회 안에도 평화 없는 전쟁과 갈등과 반목과 싸움의 현장이 되어버린 가운데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주님, 오늘도 우리가 주님의 필요를 채워주지는 못하고 우리의 필요를 따라 구하기만 함을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십시오. 평화의 주님,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되신 아기 예수여, 우리에게 오소서! 아기 예수님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실 구세주이십니다. 주님 없이는 우리의 역사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나고 핸들이 말을 안 듣는 자동차같이 파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허무와 고독과 절망 속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오소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아기 예수여!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강남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