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여러 가지 질병들이 등장한다. 그중에 가장 무서운 질환으로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이 피부병이다. 세균에 대한 지식이나 항생제가 없던 시대, 한센병(나병)이나 고름 같은 농액이 나오는 피부병은 상태가 악화되면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질환이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더라도 조선시대 역대 왕들 중에 문종, 세조, 정조 등은 등창과 같은 피부병으로 고생을 하다가 천수를 다 하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훌륭한 왕으로 창찬받은 유다 왕국의 히스기야 왕도 종기가 악화되어 생명까지 위태로운 상태가 된 일이 있었다. 당시 예언자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의 병환을 보고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고 말할 정도였다. (왕하 20:1; 사 38:1) 절망적인 상태에서 히스기야는 통곡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의 응답은 이사야를 통해 전해왔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네가 너를 낫게 하리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수한을 15년이나 더 연장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기도의 응답으로 히스기야 왕은 기적을 체험한 것이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서 기적적으로 완쾌되었다는 소식은 멀리 바벨론까지 퍼졌다. 당시 바벨론에는 ‘므로닥 발라단’이라는 인물이 왕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히스기야 왕의 쾌유를 축하한다는 명분으로 사신과 함께 친서와 푸짐한 예물을 보냈다. 실은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이에 관해서는 뒤에 상세히 설명하려 한다.)
‘바벨론의 왕’이라고 호칭된 므로닥 발라단은 어떤 인물인가? 먼저, 구약에는 그의 이름에 약간의 혼동이 있다. 열왕기하 20:12에는 ‘브로닥 발라단’으로 표기되어 있고, 이사야 39:1에는 ‘므로닥 발라단’으로 되어 있다. 동일한 인물이 구약 사본에 따라 첫 번 글자가 다르게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정확한 이름은 ‘므로닥 발라단(Merodach-Baladan)’인데, 필사 과정에서 ‘브로닥’으로 오기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므로닥 발라단’에 관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갈대아인(Chaldean)’이라는 사실이다. ‘갈대아인’은 누구인가? 메소포타미아의 역사에서 ‘갈대아’(지명)와 ‘갈대아인’(종족명)이라는 명칭이 등장한 것은 주전 800년대부터이다. 이때 메소포타미아의 최남단 지역, 곧 유프라데 강과 디그리스 강의 최하류 지역에 새로운 종족들이 대거 이주해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된 쐐기 문자 기록은 그들을 ‘칼두(Kaldu)’라고 부르고, 그들이 정착해서 사는 남부 지역을 ‘칼두 지역’이라고 불렀다. 이 명칭이 헬라어(희랍어)로 옮겨질 때 ‘칼다이오이(Chaldaioi)’로 표기되었고, 이것이 영어의 ‘갈대아(Chaldea)’가 되었다. 갈대아인의 정체에 관해서는 학계에서 논란이 있지만, 대체로 ‘아람 족속’의 일부로 본다. 이들은 여러 개의 부족 단위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 부족들은 ‘부족장’을 중심으로 강한 유대감으로 결속되었다. 부족장은 부족 공동체에서 절대적인 존재로서 군림했고, 갈대아인들은 외부의 어떤 강한 세력보다도 부족장에게 절대복종하고 충성했다. 부족장들 중에는 지도력이 뛰어난 출중한 인물들이 많았고, ‘바벨론 왕’으로 호칭된 므로닥 발라딘도 갈대아인 부족장 출신이었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