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부모를 만나고 친구와 스승을 만나며 성장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하여 자식을 만난다. 만남이 이루어지려면 눈높이가 같아야 한다. 신분이나 계급의식이 없어야 한다. 빈부나 성별, 지식, 명예를 불문한 신분 계층 간의 차별이 없어야 한다. 나아가서 섬기려는 마음과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다.
만남은 얼굴과 얼굴을 서로 마주 보는 것이요, 눈과 눈을 서로 바라보는 것이요, 마음을 나누고 정을 통하는 것이다. 만남은 상대방을 향하여 입이 트이고, 귀가 열리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만남은 커뮤니케이션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고민은 만남의 상실에 있다. 사람은 넘쳐나지만 만남의 대상은 없다. 부부 사이의 만남이 없어서 많은 가정이 깨어지고 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만남이 없어서 세대 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교인들이 교회에 나와 같이 앉아 있으나 서로 간의 만남은 별로 없다. 목사와 교인들 간에 형식적인 웃음과 애정의 언어가 오가지만, 목자와 양의 관계처럼 말을 알아듣는 사이도 아니요,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도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교회 문이 닫히고, 성도들 간의 만남이 오랫동안 단절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다. 2020년부터 시작된 전염병에 의한 관계 단절이 해를 넘기면서 2021년 신년 예배조차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이라는 변태적 모습이 일상의 삶에서 만남과 대화를 단절시켜 버렸다. 만남이 없으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형식적으로나마 얼굴이라도 보며 살았던 교인들이 벌써 교회 예배에 발을 끊고 지내 온 시간이 반년을 넘어서 새해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교회와 점점 멀어져 감을 부동의 자세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 시대는 신앙의 수난 시대이다.
지하철은 매일 빽빽한 사람들의 밀집 상태에서 운행되고, 음식점마다 얼굴을 마주 대하고 밥을 먹는 군중들로 넘쳐나지만, 교회는 점점 사람 보기가 어려워지고 식사와 교제의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불평등이 계속되고 있다. 총회의 공문이라는 것이 구청에서 날아오는 내용과 다를 게 하나도 없기에 도움이 안 된다. 교회는 ‘황성옛터’가 되어가고 있고, 대책 없이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강남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