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역사는 장진호전투에서 살아남은 미 제1해병사단이 미 10군단의 예하부대와 함께 죽음의 골짜기를 빠져나와 함흥 집결지로 모이고 여기서 다시 흥남철수작전을 할 때 나타났다. 맥아더 사령부로부터 철수 명령을 받은 미 제10군단장 알몬드(Edward Almond) 장군은 군단 예하 한국군을 포함해서 10만 5천 명의 병력을 좁은 항구를 통해 철수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갑자기 피난민 10만 명이 몰려와 이들을 구출하느냐 포기하느냐 하는 중대 기로에 놓여 있었다.
흥남항의 남쪽 원산이 이미 12월 7일 중공군 손에 들어가 차단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육로를 포기하고, 해상으로 가기 위해 흥남에 집결하였다. 흥남철수작전(1950.12.12~24)이 시작된 것이다. 거세게 밀려오는 중공군의 압박을 저지하고, 미군 3개 사단과 국군 1군단 예하 2개 사단, 카투사 875명 등 병력 10만 5천명과 피난민 10만 명을 포함하여 20만 5천명을 철수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흥남 부두는 탈출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미7함대가 동원되고, 항공모함 7척, 전함, 순양함, 구축함 등 13척이 동원되었다. 12월 12일부터 철수작전은 시작되었다. 병력 외에도 차량 1만 7천여 대, 군수품 35만 톤을 수송해야 한다. 영하 20도의 강추위와 눈보라가 휘날리는 악조건 속에서 사상 최대의 민·군 철수작전이 벌어진 것이다.
철수 명령을 받은 미 10군단장은 난감했다. 철수에 사용될 배는 125척을 지원받았으나, 피난민까지 수송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더구나 피난민 가운데는 스파이가 섞여 있을 것이라는 우려때문에 피난민을 적극적으로 구출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국군 1군단장 김백일 장군의 강력한 권고로 피난민 전부를 구출하기로 결심했다.
철수는 군인부터 시작되었다. 12월 12일 국군 3사단이 제일 먼저 철수하고, 15일엔 미 해병 사단이 철수했다. 아군의 철수작전이 계속되는 동안 중공군의 공격도 맹렬했다. 17일은 국군 수도사단, 21일은 미 7사단과 미 10군단사령부가 철수했다. 24일 미 제3사단과 유엔군이 마지막 철수하면서 흥남부두는 폭파되었다.
피난민들은 항만이 폭파되기 전, 12월 19일부터 철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배가 턱없이 부족하여 수송선의 정원이 1천 명인데도 4~5천 명씩 태워 보냈다. 12월 23일 마지막 남은 배는 7,600톤급 화물선인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 뿐이었다. 빅토리호는 제작된 지 5년밖에 안 되는 민간 유조선으로서 항공연료 300톤이 실려 있었다. 해군에게 항공유를 공급하기 위해 왔다가 구출작전에 동원된 것이다. 빅토리호의 라루(Leonard LaRue) 선장은 피난민을 구출하기 위해 배에 실려 있던 기름과 모든 장비를 바다에 빠트리고 피난민들도 모든 짐을 버리게 하고 몸만 승선해서 모두 14,000명을 태웠다. 정원 60명인 작은 배에 14,000명 이 탄 것은 기적이었다.
빅토리호는 28시간 항해 끝에 12월 24일 부산항에 도달하였다. 물, 음식, 의약품 등이 부족했지만 단 1명의 희생자도 없이 자유의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부산에는 이미 와 있는 피난민들로 가득 차 있어서 더 이상 수용할 공간이 없었다. 결국 부산항 입항이 거절 되어 80km 떨어진 거제도 장승포에 내려놓았다. 25일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그런데 배 안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부산까지 오는 동안 신생아 4명이 태어났는데 장승포에 내리기 직전 또 한명이 탄생한 것이다.
미군들은 아기의 이름을 김치1, 김치2, 김치3, 김치4, 김치5로 지었다. 신기하게도 마지막 날, 크리스마스에 태어 난 ‘김치5’가 지금 장승포에 살고 있다. 평화가축병원을 하고 있는 이경필 (70세) 원장이다. 미국 정부에서는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출작전을 한 ‘기적의 배’라고 불렀고, 2004년에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그리고 당시 선장이던 ‘라루’ 씨는 6·25이후 종교에 귀의하여 가톨릭 수사가 되었으며, 2001년 10월 14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딱 한 번 세상에 나오고 ‘마리너스’라는 이름으로 계속 수도원에서만 살았다. 그는 흥남철수작전 때 피난민의 아비규환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것이다.
배영복 장로<연동교회>
• 한국예비역기독군인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