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씨는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잘 연구해 보면 또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씨 뿌리러 나가는 자가 뿌린 씨는 원어성경과 영어성경에 단수로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씨가 ‘여러 가지 좋은 예수님의 교훈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가만히 묵상하면 의문이 되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씨를 뿌리는 농부의 모습입니다. 농부는 씨를 길가, 바위 위, 가시떨기 속에까지 아무 데나 막 뿌리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모든 농부들에게 씨앗은 생명처럼 귀중한 것입니다. 특히 땅이 척박한 이스라엘에서 씨앗 하나는 더 소중합니다. 그런데 왜 이 농부는 씨앗들을 막 뿌려대고 있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농부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뿌리고 계시는 씨앗은 바로 복음의 핵심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씨앗이 단수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고 모든 땅에 뿌려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밭에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심겨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손발이 되어서 씨를 뿌리러 나가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들의 교회와 우리들의 선교가 다시 돌아가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Ad Fontes’는 ‘근원으로, 본질로’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1517년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이 된 ‘근원으로 돌아가자’의 운동은 당시 로마 가톨릭이 독점하고 있던 불가타 라틴어 성경이 아닌, 히브리어 헬라어 원어성경으로 돌아가 가톨릭의 문제를 발견하고, 잘못된 신앙전통과 구원의 진리를 바로잡았습니다. ‘Ad Fontes’로부터,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ci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이 다섯 가지 종교개혁의 핵심 가치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할 자리는 언제나 변함없이 다시 복음의 자리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선교신학은 복음주의 선교신학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교단의 선교정책은 우리의 선교신학이 선교현장에 실천이 되는 복음주의 선교를 기초로 하면서 선교방법론에 있어서는 현지 교단과 협력을 중시하는 에큐메니칼 협력선교를 지향합니다. 선교는 온 교회(the whole gospel), 온 세상(the whole world)의 모든 사람(the whole people)에게 전하는 일이기에 우리는 이것을 ‘통전적선교’(wholistic mission)라고 정의합니다.
선교학자 스테픈닐은 “만약에 모든 것이 선교라면 아무것도 선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무엇이든지 가하나 무엇이든지 유익하려면 그것은 결론이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이 지역의 필요를 알고 그 모든 필요를 채우는 선한 사역들을 많이 한다고 해도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증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고 그것은 선교가 아닙니다.
전 장신대 총장이었던 서정운 교수는 ‘선교는 단순하다’고 했습니다. 선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목표와 정신과 방식으로 하나님의 선교(구원 운동)에 투신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이같이 단순하고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여 헌신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복음의 핵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가 우리의 선교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