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교회가 해마다 마지막 날 자정과 첫날 0시를 전후하여 송구영신예배를 드린다. 평소에 교회에 잘 나오지 않는 성도들도 이날만은 온 가족이 한자리에 앉아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이처럼 성도들이 송구영신예배에 정성을 쏟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새해의 복을 받기 원해서이다.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절대적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 그리고 그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주권을 가진 하나님께 간절하게 복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자체가 틀렸다거나 잘못된 신앙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은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복이었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으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많은 축복을 선포해 주셨다. 하나님을 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자손만대로 복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약속을 굳게 믿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예배 태도인 것이다.
올해에는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매년 이즈음 열리는 다양한 신년축복성회도 비슷한 맥락의 집회라 하겠다. 다만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성도들의 기원과 축원이 복음에 합당한 기도가 되고 사랑의 나눔이 될 수 있다면, 더 풍성한 축복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송구영신예배 때 나누는 인사말이나 연초 만남에서 주고받는 덕담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상투적인 말이 근원적인 복과 진심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곤 한다. 오랜 세월 우리의 정서를 대변하는 신년 인사로서 이보다 더 함축된 의미를 가진 축원의 인사말이 없다 할지라도 좀 더 신학적인 성숙함으로 빚어낸 신앙적 표현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서양에서 주고받는 “새해 첫날은 모든 사람들의 생일이다(New Year’s Day everybody’s birthday)”라는 새해 인사말이 좀 더 기독교 신앙에 합한 덕담인 듯하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복을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을 감사함으로 받아서 기쁘게 누리면 되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생명을 주셨고, 생명의 위기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으며, 영원한 천국을 약속해 주셨으니 더 이상 주실 복이 없이 다 주신 것이다. 소유의 복이 아니라 존재의 축복을 누리는 삶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축복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선포하신 복은 우리가 이해하는 복의 개념을 뒤집어 놓으신 장엄하고도 빛나는 축복이었다. ‘행복하여라!’로 시작되는 8가지 축복의 선언은 우리의 송구영신예배나 신년축복성회의 소원인 받아 누리고 소유하여 부를 축적하는 그런 복이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부터 나에게로 온다는 의미의 복의 개념도 아니었다. 이미 주어진 존재 자체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존재의 축복을 누리며 감사하는 행복의 개념을 깨닫게 하시는 복의 선포였다. 평평한 산자락에서 조곤조곤 들려주신 말씀이었으나, 내용은 폭풍 같았다. 나의 존재와 다른 사람의 존재가 더불어 형평성을 이루는 존재의 안정이 행복의 자리임을 선언하신 축복의 절정, 행복의 절정으로의 초대였다. 진정한 행복은 우리가 이제까지 생각하던 소유의 의미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에 있음을 새롭게 깨닫는 신앙인다운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를 당신의 생명처럼 사랑하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되기를 소원한다.
손신철 목사
<인천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