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주는 것이 있다. 대표적으로 나무와 소가 있다. 나무는 열매를 내어 주고, 무더운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자신의 몸 전체를 내어 주어 집을 짓는 재목으로, 땔감으로, 가구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이렇듯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는 나무는 아낌없이 주는 존재이다. 사과나무는 자신의 사과를 모두 따 가도 불평하지 않는다. 살구나무와 배나무, 자두나무와 앵두나무, 밤나무와 도토리나무 등 세상의 모든 나무가 다들 이렇게 똑같다.
소도 마찬가지이다. 소는 무거운 쟁기를 끌고 논밭을 갈아주며, 농사를 돕고, 산더미 같은 집을 실은 수레를 몇십 리까지 끌어준다. 주인을 태우고 고갯길을 힘들게 오른다. 못 올라가면 채찍에 맞아 가면서 주인이 원하는 곳까지 간다.
그리고 우유도 주고, 죽어서는 불고기나 갈비 등 사람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제공해 준다. 가죽을 다 내 주어 신발과 가방 등 가죽 제품을 만들 수 있게 하고, 피와 뼈도 먹을 거리로 준다. 소의 여러 가지 부위를 통해 치료약도 만든다고 한다. 이렇듯 소는 살아 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아낌없이 주는 존재이다.
사람이 나무나 소처럼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최선의 사랑이 무엇이고 인생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주는 것은 신의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흉내는 낼 수 있다. 물론 흉내 내는 것도 쉽지는 않다. 많은 인내와 절제와 희생과 양보가 있어야 하고, 사적인 이익에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그 길에 어떠한 고통이 따르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랑과 희생의 가치가 인간에게 얼마나 깊은 감동을 주는지 잘 알게 해 주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의 가수이자 동화작가인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단순한 구성으로 쓰인 작품이지만, 이야기가 주는 깊이와 감동은 실로 크다. 이 짧은 이야기에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이 마치 잘 익은 사과처럼 영글어 있다.
소년과 나무는 서로 친구가 되어 날마다 만나서 놀았다. 소년은 나뭇잎으로 왕관을 만들어 쓰고 숲속의 왕 노릇을 하며 즐겁게 지냈다.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기도 하고, 사과를 따서 맛있게 먹기도 하였다. 신나게 놀다 피곤하면 나무가 만들어 준 그늘에서 달콤한 잠도 잤다. 소년은 나무를 좋아했고, 나무는 즐거워하는 소년의 모습에서 행복을 느꼈다.
시간이 흐르고 소년은 점점 나이를 먹어 갔다. 나무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나무를 찾아갔고 나무는 소년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무는 예전처럼 신나게 놀자고 말했지만 소년은 어린 시절처럼 놀지 않았다. 소년은 이미 어린이가 아니었다. 소년이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따다 팔라고 말했다. 소년은 열매를 따서 가 버렸다. 나무는 자신의 과일을 사랑하는 소년에게 줄 수 있어 참 행복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소년은 나무를 찾지 않았다. 나무는 소년이 오지 않아 슬펐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이 나무를 찾아왔다. 나무는 뛸 듯이 기뻤다. 나무는 즐겁게 놀자고 소년에게 말했지만 소년은 따뜻한 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무는 자신의 가지를 잘라 가라고 했다. 소년은 나뭇가지를 잘라서 가져갔다. 나무는 자신의 가지를 소년에게 줄 수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소년은 오지 않았다. 나무는 또 다시 슬퍼졌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은 나무를 찾아왔고 나무는 반갑게 소년을 맞아 주었다. 나무는 신나게 놀자고 했지만 소년은 나이가 들어서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소년이 배가 필요하다고 말하니, 나무는 자신의 줄기를 베어다 배를 만들라고 하였다. 소년은 나무를 잘라서 가져갔다. 나무는 자신의 몸을 소년에게 줄 수 있어 행복했다. 또 오랜 세월이 지나고 소년이 나무를 찾아왔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