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미주한인교회의 역사 – 118년 역사의 미주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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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닮아가는 섬김 리더십으로 이민교회 과제 극복할 것”

1938년 이승만 대통령 참석 야외예배(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미주한인교회의 초기 역사와 독립운동 (1900-1950년)

1903년에 미주에 첫 한인교회가 세워졌으니까 미주한인교회는 금년으로 118년의 역사를 지니게 되었다. 미주한인교회는 한인 이민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한인 이민자들의 삶이 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미주한인 이민의 역사가 곧 미주한인교회의 역사이다.
1903년 첫 이민선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에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이민 온 사람들 102명 가운데 50여 명이 인천 내리감리교회 교인들이었고, 그들은 그해에 곧바로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를 세웠다. 1904년에는 하와이에만 한인교회가 14개, 1914년에는 39개가 되었다. 일부 한인들이 하와이에서 인근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면서 미국 본토에도 1904년에 ‘LA연합감리교회’가 로스앤젤레스에, 1905년에는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가 샌프란시스코에 설립되었고, 1906년에는 제퍼슨장로교회로 불리는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가 미주 최초의 한인장로교회로 로스앤젤레스에 세워졌다. 타주에서는 1914년에 오클랜드한인감리교회, 1919년에 시카고한인감리교회, 1921년에 뉴욕감리교회 순으로 세워졌다.

1906년 첫 예배처(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초기의 이민은 일제 강점기에 이뤄졌기에 초기 미주 교회들은 해외 독립운동의 중심체가 되었다. 이승만(李承晩) 임시정부 대통령의 한국사와 한국어 강좌, 무장항일운동을 주창했던 박용만 선생이 세운 네브래스카 소년병학교, 안창호 선생과 심영신 여사 등에 의해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에게 보내진 거사 자금과 하와이,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활발히 일어났던 독립자금 모금운동은 대부분 한인교회들이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1924년에 아시아인들의 미국 이민을 불허하는 이민법이 미 의회에서 통과된 후로는 한인 이민자 수의 정체와 더불어 이민 교회도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1900-1950년 사이에 미주 전체에 한인 인구가 1만 명이 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조국 독립을 위한 미주한인교회들의 헌신과 기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1920년대 예배처(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미주한인교회의 발전 (1950-2000년)

1950-2000년 대략 50년 사이에 한인 이민자와 유학생 수의 증가와 모국 교회의 발전과 더불어 미주한인교회도 큰 발전을 이루었다.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에는 미군과 결혼한 한인 여성 5만여 명과 전쟁 고아들이 미국으로 입국하였고, 그들은 교회의 품에서 낯선 미국에 정착하였다. 여지연 교수는 그들에 대한 첫 이상을 ‘한인교회 예배 시간과 친교 시간에 남편도 없이 홀로 앉아있는 여성’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한인교회가 그들의 안식처가 되었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1965년에는 이민 규제법이 삭제되고, 매해 아시아 각 국가들로부터 2만 명 한도의 이민이 허용되면서, 이후로 매년 1만 5천 명 정도의 한인들이 군사 독재와 전쟁 가능성을 피해 평화와 부요를 좇아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한국의 의사, 약사, 간호사, 의료 기술자, 과학자와 기타 고급인력들이 선진국에 대한 동경(American Fever)과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이민 러시를 이루었다. 유학생들 중 상당수도 미국에 남으면서 이민 대열에 합류했다. 한인 이민자들은 LA, 뉴욕, 시카고를 중심으로 영세한 규모의 한인 사업체들을 운영했으며, 1980년대에는 코리아 타운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민자 수의 증가와 모국 교회의 발전과 더불어 1980-1990년대에는 미주이민교회도 발전의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한인 이민자가 50만 명을 넘어선 1980년대에는 교회 수가 1000여 개, 100만여 명인 1990년대는 2000여 개로 알려졌다. 이민자들이 증가하면서 한인교회는 이민자들의 이민 정착을 돕는 센터 역할을 주도하게 되었고 규모 면에서도 대형화된 교회도 나타났다. 올해 115주년을 맞는 미주 최초 한인장로교회인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도 한인 이민자들의 증가와 더불어 1970-1980년대에는 부목사와 당회원 증원 등 지도 체제 강화, 규칙 정비, 예배당 신축 등 많은 발전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아울러 미주한인교회의 발전의 이면에는 비신앙적 동기와 요소의 누적으로 인한 참된 기독교 신앙의 결핍 혹은 부재, 교회 성장 위주의 목회의 부작용, 미국의 세속화와 탈종교화 추세의 악영향,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의 갈등과 분쟁과 분열 등의 어두운 그림자도 동시에 자라났다.

1940년대 찬양대(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미주한인교회의 현황 (2000년 이후)

KCMUSA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내에 등록된 한인교회 수는 2019년 7월 기준으로 3,514개이다. 이는 세계 한인교회들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숫자이며, 미주 한인(1,453,671명) 413명당 1개 꼴이다.
2000년 이후로는 성장이 둔화되다가 최근 들어 모국의 발전과 아메리칸 드림의 쇠퇴로 인한 이민 열기 감소, 유학생 수의 감소, 1세 위주의 한인교회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한인 2~3세들의 이탈, 이민 규제 강화, 모국으로의 역이민 증가 등으로 한인교회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2018-2019년의 한인 유학생 수는 52,250명으로 10년 전의 72,168명에 비해 27.6%, 전년도에 비해 4.2% 감소했다. 유학생 수의 지속적인 감소는 한인교회의 노령화와 감소 추세에 영향을 주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에 따르면 2014년에는 교회가 20곳, 2015년에는 52곳이 감소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기독교의 쇠퇴와 세속화, 동성애와 종교다원주의 등 반기독교적 문화의 증폭,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받는 불신과 혐오의 증가, 한인교회의 노령화 등과 맞물리면서 한인이민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1940년대 찬양대(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미주한인교회의 특성과 과제

미주한인교회는 ‘이민자’와 ‘이민사회’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빚어진 공동체이기에 순전한 신앙적 동기와 기능만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민족적인 동기와 기능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형성된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공항 픽업에서 시작하여, 거주지 마련과 전기와 수도 개설과 살림 도구 마련, 운전면허증 발급과 차량 구입, 학교 선정과 입학, 일자리 주선, 이민 생활에 필요한 각종 정보와 안내 등 이민 정착에 필요한 모든 것이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민을 옴과 동시에 대부분 교회에 나가게 되고, 그 결과 기독교인이 이민자의 7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민교회는 ‘한인 사랑방’, ‘마을 회관’, ‘한인 회관’ 같은 곳이 되어 언어와 민족과 문화와 정서의 동질감을 나누면서 타향살이 외로움의 극복과 정서적 안정, 자녀 교육, 경제와 여가와 사교 활동, 독립 운동 등이 이뤄지는 센터가 되었다. 한인교회들은 ‘안답어미’(안타깝고, 답답하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미치겠다)와 ‘남청여바’(남자는 청소, 여자는 바느질)의 이민자들을 품어 안는 삶의 안식처가 되었다. 재미 교육학자 김수안은 ‘초기 이민자들의 생활과 교회는 분리될 수 없는 밀접한 관계였으며 또한 그들의 자녀 교육도 교회를 중심해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포괄적이고 다기능적인 역할’ 때문에 이민교회들은 교회 본래의 동기와 목적을 구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오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신앙적 동기와 목적’이 빈약해지면서 교회가 세속적인 교제 혹은 문화 공동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를 만나고, 예수를 영접하고, 예수를 배우고 따르는 참된 그리스도인 곧 참된 예수 제자를 빚어내고 목회와 교회 생활의 초점을 맞추면서 개인과 공동체가 예수 반석 위에 세움을 입도록 힘쓰는 것이 위기 극복의 근본 처방이 될 것이다. 아울러 예수님을 닮아가는 목양 혹은 섬김 리더십(shepherding or serving leadership) 함양, 2세들을 위한 영어권 사역의 개발과 투자, 상식과 공공선에 부합하고 증진하는 처신과 프로그램, 디지털 세대들을 위한 대책, 전도와 선교 사명과 열정 회복 등이 해결해 가야 할 과제들이다.

1938년에 건축한 예배당(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박일영 목사(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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