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 죽음을 예비하는 슬기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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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여름,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 우리나라는 비교적 이에 대한 조치를 잘 했다는 칭찬까지 받으면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샀다.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을 자주 펼치는 정부의 조치는 우리들의 생각과는 사뭇 다른 정치적인 술수가 많아 엉뚱한 길로 이끌기도 했지만, 이 난관을 극복하겠다는 방역 당국과 이를 직접 감당하는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당국의 지시에 충실하게 따르는 많은 국민들의 협조로 비교적 성공적인 방역을 펼치게 되었다. 그러면서 추운 시절에는 기세가 번창하지만 기온이 올라가면서는 코로나의 병균이 누그러질 것이라는 예측만 믿고 이제 여름이 오면 지겨웠던 코로나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막연한 희망과 기대만을 갖고 방역에 무관심하면서 자유롭게 생활했던 세계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면서, 마치 세기의 종말이라도 온 듯 무섭게 번지는 감염 사태로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이때에 나의 지인이 마침 팔순을 맞아 미국에 사는 자녀를 방문하고, 친척이나 친지들을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향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K-방역’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세계인들의 부러움을 받던 때였고, 지인 내외도 건강하게 살아왔기에 별다른 주의를 하지 않고 평상시처럼 편안하게 여행에 임했다. 미국에 도착해 이틀간 시차적응을 하면서 한국마켓을 방문해 찬거리를 사갖고 돌아온 다음날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여행으로 인한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은 것으로 여겨 집에서 쉬면서 조리하던 중에 심상치 않은 증세로 병원을 방문해서 ‘코로나 확진’을 받게 되어 입원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1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병이 악화되어 사망하고, 가족들과의 영면의 인사도 못하고 가족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죽음을 미처 느끼기도 전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사망했다.

얼마 후에 그 소식을 듣고 너무나 황당했다. 아무리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 하고 죽는 날은 알 수 없다고 해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니, 젊은이들도 사망하지만, 이제 내 나이가 되었으면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특히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겠다고 여겨졌다. 해답은 간단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나도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러면 지금부터라도 이 죽음을 ‘덕스럽고 편안하게’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부자라고 인정받는 사람들의 죽음에는 재산 문제로 인한 분쟁이 많았던 것을 경험했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그런 분쟁을 일으킬만한 재산도 없지만, 자녀들과의 합의로 우리 두 내외가 지금 같은 방식으로 생활하면 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기에 ‘재산 문제’로 인한 어려움이 없는 것이 다행이다. 또한 요즘 들어 사회적으로 인식이 되어 가는 「사전연명의향서」는 이미 작성되었고, 「장기희망등록증」도 당연하게 신청되어 있으니, 사망 후에 일은 일단 정리가 된 듯했다. 다행스럽게도 건강에는 그리 큰 문제가 없음을 항상 감사하게 여기며, 그래도 언제 어떤 모양으로 나에게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치나?」라고 항변하지 않는 마음을 갖기 위해 언제나 순종할 것을 다짐하는 신앙심을 지니기를 노력해야겠다.
죽음이란 것은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며, 우리는 누구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감내해야 하는 운명인 것으로 여겨 편안하게 순종하며 예비하는 슬기로움이 있어야 겠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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