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법부가 요동치고 있다. 아마도 건국이래 처음 있는 사태가 아닌가 생각한다. 계기는 전 대법원의 법원행정처가 독립적 판단을 그 생명으로 알아야 할 판사들의 재판 과정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 이른바 블랙리스트(the blacklist)를 만들어서 판사인사에 반영했고 더 나아가서 한 특정한 판결에는 사법부의 수뇌부가 행정부와 일종의 거래를 통해 합의한 내용이 반영되도록 직간접적으로 재판에 관여했다는 의혹으로 당시의 대법원장과 몇몇 대법관 그리고 그 실무를 맡았든 법원행정처 차장이 기소되고 지금 재판을 받았는데 2심까지는 모두 무죄로 판결난 사건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나 할까 위에서 말한 대법원장의 후임이 이번에는 한 고법 부장판사의 국회탄핵에 직간접으로 연결된 듯한 언행으로 또 한 번 시법부의 정치적 독립성과 업무의 중립성을 의심케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번에는 위에서 말한 판사가 탄핵 이전에 사표를 제출하고 대법원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왜 자기의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사유를 묻자 지금 국회에서 탄핵이 논의되고 있어서 사표 수리가 곤란하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는데 그 내용을 당사자가 녹음했다가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마자 그것을 공개한 사건이다. 여기서 대법원장은 자기가 그 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마치 여당의 눈치를 보는 듯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사건으로서 일반 시민들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사건을 보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한 나라에 있어서 정의를 지키는 최종 보루라고 흔히 말하는 사법부가 이정도 밖에 되지 않나 생각하면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원래 사법부란 칼이나 권력이 아닌 진실과 정의를 몸소 밝혀냄으로써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어내는 정부기관이며 그래서 한 나라의 국격과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척도인데 그것도 초임판사가 아닌 사법부의 수장이 이런 음모나 거래에 직접 연루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국내외의 신뢰와 위상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피해를 주었다는 의미에서 매우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왜 이러한 불행한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마디로 이런 사건이 한 번도 아니고 지난 10년 사이에 두 번씩이나 발생했다는 사실을 눈 여겨봐야 하겠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단순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서 파생한 사건이라고 하는 것이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구조적 문제란 우리가 이러한 사건들을 각각 따로따로 봐서는 옳은 해답이 나오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제한하지 넓고 멀리 봐야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다 서로 연계되어 있어서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한두 사람이 바뀐다고 사라질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그 구조의 핵심적 성격은 무엇인가? 사법부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른 행정부의 관료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관료화(the bureaucratization)가 되어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관료화란 한마디로 말하면 어느 조직에서나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게 되면 동료 간의 공식적 관계가 긴 시간이 흐르면서 조직의 공식적 사명(the MIssion) 또는 목표달성보다는 사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익단체로 변질되는 것을 말한다.
조창현 장로
<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펨부록)정치학 교수 · 전 중앙인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