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국가경쟁력을 연구해서 매년 발표하는 WEF는 그 순위를 발표하는데 우리나라의 높지 않은 국제적 경쟁력 가운데 가장 뒤진 분야의 하나를 ‘사법부’라고 지적해 온 지 오래되었으나 이러한 문제를 국내에서 제기하는 것을 과문이어서인지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가 진심으로 경쟁력 있는 나라를 만들려면 단순히 경제발전 이외의 다른 분야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무시한다면 최종적으로 일류국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만약에 필요하다면 무슨 제도라도 못 바꿀 이유가 없고 그러려면 어떤 사법제도가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에 가장 잘 적합한 지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럼 다른 선진 자유민주국가에서는 도대체 무엇이 우리와 크게 다른가? 나라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가장 핵심적 차이는 사법부가 단독으로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전보하며 승진하는 나라는 매우 드물다는 말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나라들은 법관의 인사권을 대법원장이 단독으로 행사하지 않는다.
좀 구체적으로 보면 대통령중심제의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연방정부의 모든 판사를 임명하나 국회의 인준이 필요하고 주 정부의 경우 사법부의 모든 판사는 주민의 직접선거를 통해서 선발한다. 그러나 내각책임제하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법정기구인 사법부선발위원회(the Commission on Judicial Appointments)를 설치하여 그 나라의 모든 법관직에 공석이 생길 때마다 그 직위를 공개하고 유자격자들로 하여금 지원케해서 일정한 과정을 거쳐 가장 적합한 후보자 1명을 추천하면 형식적으로는 행정부의 법무장관(내각제에서의 행정수반을 대신해서)이 임명하나 만약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에 선발위원회가 같은 후보자를 다시 추천하면 그때에는 무조건 임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 선발위원회의 권위가 막강하다는 뜻이다. 초임법관 선발에서부터 시작해서 모든 법관은 영국의 경우 사법부선발위원회(the Commission on Judicial Appointments) 그리고 대법관의 경우 별도의 최고법원선발위원회(the Commission on the Supreme Court Appointments)를 각각 두어 선발한다. 독일은 연방정부의 경우에는 연방선발위원회(Federal Selection Committee), 프랑스도 사법부고등협의회(the Higher Council of Judiciary)에서 인사권을 행사한다. 그들이 얼마나 법관 인사에 그 나라의 국민의 목소리를 광범위하게 포함시키려고 노력하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위원회들의 구성 내용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사법부 이외의 인사가 다수 참여하는 선발위원회는 법관의 관료화를 미리 예방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임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왜 그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사건이 거의 발생할 수 없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이른바 인사위원회는 그 대부분의 경우 형식적이고 거수기에 불과한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럼 먼저 영국의 경우부터 법관을 선발하는 위원회의 구성을 알아보자. 선발위원회의 위원장직은 아예 처음부터 법관이 아닌 민간인이 맡고, 5명의 법관, 2명의 법조인, 5명의 비법조 시민, 1명의 호민관(Tribunal office holder), 그리고 1명의 치안판사(Magistrate)로 구성된다. 그리고 독일의 경우도 우선 연방선발위원회는 16명의 주 정부 법무장관과 16명의 연방의회에서 선출된 위원으로 구성되며 주 정부의 주 선발위원회는 대개 11명에서 15명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사법부, 주 의회, 그리고 해당 주의 법조계의 대표로 구성된다. 그리고 프랑스의 사법부고등협의회 역시 총 12명으로 구성되는데 5명의 법관, 1명의 검사, Councilor of State 의원들이 선출한 1명, 대통령, 상원, 하원이 각각 1명씩,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당연직으로 참석한다는 사실이다.
조창현 장로
<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펨부록)정치학 교수 · 전 중앙인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