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이집트를 군사 강대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스라엘이 1948년 독립한 후, 이스라엘과 네 번에 걸친 전쟁에서 이집트는 4전 4패라는 부끄러운 전적을 기록했다. 할 수 없이 1979년 이집트의 사닷트 대통령은 아랍 국가로서는 최초로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었다. 벌써 오래 전 일이지만, 필자가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군인들이 총을 메는 멜빵을 노끈으로 묶어서 만든 것을 보고 세상에 이런 군대가 있나 하고 동행했던 사람들과 웃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오늘날과는 달리 고대 애굽은 군사 강국으로 강력한 제국이었다. 찬란한 거석 문명을 이룩하기도 했다. 지금부터 약 4500년 전, 우리나라 단군 시대보다 앞선 시대에 이미 그들은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현재 남아있는 수많은 피라미드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카이로 교외 기자(Giza)에 있는 3기의 피라미드이다. 가장 높은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높이가 139m에 달한다. 거의 40층 건물 높이이다. 그 옆에 있는 피라미드는 그의 아들 케프렌(=카프레) 왕의 것이다. 선왕의 것보다 작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높이가 136m에 이르고 밑변의 길이가 216m나 된다. 그 옛날 돌산에서 돌을 깎고 무거운 돌을 운반하고 정교하게 쌓아 인간이 만든 최대의 인공 구조물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은 고도의 수학과 건축술, 측량술 뿐만 아니라, 풍부한 경제력과 수많은 사람을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사회 조직이 구비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고대 애굽은 제국을 유지하는 강한 군대를 갖고 있었다. 그들을 군사 강국으로 만든 비장의 전투 부대는 마병대와 병거대였다. 애굽인들은 일찍부터 말을 전투에 활용하는 전술을 익혔다. 말들을 사육하여 마병대를 조직했고, 말이 끄는 이륜차를 개발하여 이를 타고 전투하는 병거대를 강화했다. 잘 훈련된 애굽의 마병대와 병거대를 당해낼 군대가 없었고, 애굽 군대는 무적의 강한 군대가 되었다. 부조로 조각된 고대 애굽 왕들의 전투 장면을 보면, 왕은 말이 끄는 병거를 타고 활을 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말은 고대 애굽 군대의 핵심 ‘병기’였고, 따라서 애굽은 말들을 많이 생산하고 사육하는 나라로 고대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이스라엘의 솔로몬이 왕위에 올랐을 때 그는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서 마병대와 병거대가 필수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애굽으로부터 거액을 들여 병거와 말을 구입했다. (왕상 10:26-29) 1400대의 병거와 12000필의 말을 구매하여 병거대와 마병대를 조직하고, 병거성을 건축하여 이들을 주둔시켰다. 열왕기는 말과 병거의 구매 가격까지 정확히 기록해 놓았다. 병거는 한 대에 은(銀) 600세겔, 말은 한 필에 150세겔을 지불했다. 1세겔이 11.4g이므로, 병거 구입비는 은 9600kg이 되고, 말 구입비는 은 2만 kg이나 된다. 국방을 위해서 솔로몬 왕은 엄청난 거금을 지불한 것이다. 한편 애굽으로서는 말 수출을 통해서 거액을 벌어들인 것이다.
역사에 영원한 제국은 없는 법이어서 주전 1천 년대 말에 들어오면서 애굽의 부강했던 전성기는 끝이 나고, 그 자리에 앗수르 제국이 최강자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