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다른 어떤 종교도 흉내 내지 못하는 부활의 종교이지요. 모든 종교의 교주들은 화려하고도 웅장한 멋있는 무덤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몸이 없는 빈 무덤뿐입니다. 왜?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라”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요 11:25)
먼저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5절)
부활의 종교는 생명을 불어넣는 종교임을 교훈합니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14장 6절로 선포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자신이 친히 생명이라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신 주께서 생기를 명하시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7장 5절에서 6절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는 말씀으로 대언하면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남을 증거한 것입니다. 이런 역사의 근원은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요한복음 6장 63절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선언함에서 찾습니다. 우리 모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므로 모든 백성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형통하기를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로 기독교는 초월적인 종교입니다.(8절)
부활의 종교는 시간의 순리를 초월하는 초월적인 종교임을 교훈합니다. 나아가서 혈육을 초월해서 메시아가 오셨다고 마태복음 1장 16절로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자연의 순리를 초월한, 물의 본질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종교라는 것이 요한복음 2장 9절에서 10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것을 내고 취한 후에 낮은 포도주를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고, 구약에도 주님의 영광을 간절히 사모했던 아브라함도 요한복음 8장 56절 “너희 조상 아브라함도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소망의 눈으로 주님의 영광을 보았음을 교훈합니다. 주께서도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기를 원하시므로 하루를 천년 같이 초월해서 베드로후서 3장 8절로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전제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음부의 영혼들에게 베드로전서 3장 19절로 “그(주)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고 복음전파를 증거합니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지만 음부에서 3000년을 초월해서 물 심판 받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우리들도 많은 사람들은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여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시길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는 대속의 종교입니다.(10절)
부활의 종교는 절대주권에 순종해야 할 대속의 종교임을 교훈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을 따라 주께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셨기 때문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요 1:29) 또한 주께서 친히 마가복음 10장 45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몸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증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대속물은 유월절 어린양이어야 함을 고린도전서 5장 7절로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은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대속의 희생물이라고 증거합니다. 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은 천국의 시민들에게 분명한 삶의 푯대를 베드로전서 2장 24절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고 ‘목자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이라고 푯대를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김승규 목사
<총회 부흥전도단 부서기·김해열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