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사연은 전라북도 어느 지역에서 나무를 쌓아 놓은 어느 집 창고에서 잠을 잤을 때였다. 마침 거기에는 옻나무가 있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그 위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하루이틀 후에 몸이 가렵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더니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진물이 났다. 결국 옻독이 내장까지 퍼져 나가고, 다리가 부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손가락도 퉁퉁 부어 올랐고 얼굴마저 뒤틀리고 나니 몰골이 흉측하게 변했다. 그리고 목숨까지도 위태로워 나무 밑에 앉아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내 자신이 너무나 처량했다. 아침 해는 떠오르는데 왜 나는 죽어야 하는가?
그때였다. 어떤 할머니가 찬송가를 부르면서 내 앞을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나를 바라보았다. “얘야, 옻이 심하게 올랐구나. 그대로 두면 위험하겠구나. 이름이 뭐니?” 하고 묻고 나서 썩은 악취가 나는 내 머리에 손을 얹고 나를 위해 뜨겁게 기도해 주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말씀하시길 “세상 사람은 너를 버렸을 지라도 하나님은 너를 지켜 주실 것이니, 하나님을 잘 믿어라”라고 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나병 환자 취급하면서 멀리했는데, 그 할머니는 나를 사람답게 대해 주셨다. 그때 “나는 어떻게 해야 살아갈 수 있을까?”, “누가 나를 도와줄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나무 밑으로 그 할머니가 다시 찾아와, “내가 집에 가서 생각해보니 계속 네가 떠올랐다. 얘야, 우리 집에 같이 가자. 하나님이 나를 너에게 인도해 주시는구나”라고 했다.
할머니는 닭을 삶아 그 물로 목욕을 시켜 주시고, 익힌 닭고기는 내게 먹여 주셨다. 그리고 매일 나를 안고 몸에 생긴 옻 고름을 입으로 빨아 내시며, “주여! 선태를 깨끗하게 다 낫게 해 주세요” 하고 매일매일 기도해 주셨다. 그 할머니의 기도와 사랑으로 나는 옻독이 치유되고, 절망에서 희망을 얻게 되었다. 다 나은 후 할머니가 나를 안고 말씀하셨다. “얘, 선태야! 나는 가진 것이 없구나. 아들 하나는 군대에 갔고, 논밭 하나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경작시켜 산다. 만일 내가 돈이 있었으면 너를 키웠을 걸, 나는 가난하구나. 하지만 너에게 약속하마. 내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잊지 않고 너를 위해 매일 기도해 주겠다. 너는 앞으로 하나님 사랑을 받고, 목사님이 되어서 온 세상을 다니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여라.”
이렇게 나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할머니! 친어머니도 이런 사랑을 주실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그 사랑을 받을까? 그 후로 비록 깡통을 들고 살았지만, 가진 돈 중 깨끗한 돈을 골라 하나님께 드렸다. 매 주일이면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거지 동료들과도 얻은 밥을 앞에 놓고 기도하고 먹고, 거지들에게 전도했다. 나는 눈 감은 거지이기에 눈뜬 동료보다 먹을 것을 잘 얻었다. 그 얻은 것을 잘 베풀다 보니, 거지 세계에서 거지 왕자가 되었다.
열 명 남은 동료들이 나를 지켜 잠자리도 만들어 주었다. 거지 사회에도 얻어먹는 구역이 있기 때문에 자기 구역에 남이 침범하면 안 되는 규율이 있었다. 전쟁 때는 무법천지이기에 사람들이 죽어서 비참하게 버려지는 모습도 수없이 많았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나는 거지 왕자로 떳떳하게 살아났다. 나와 함께 거지 생활을 했던 동료 한 분도 훌륭한 목회자로 한 평생 하나님을 섬기다가 얼마 전에 하나님 나라로 갔다.
이 모든 일들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 위에 은혜이고 크나큰 축복이다. 살아생전 세상에서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와 모든 사람의 은혜에 다 보답하지 못할 것 같다. 이 벌레 같은 나를 귀한 그릇으로 만들어 주시고 성직자의 거룩한 이름도 주시고 시각장애인 세계를 바꿔 놓을 수 있도록 세워 주신 그 은혜, 그 사랑을 무엇으로 갚을 수 있을까?
축복·행복·희망 에세이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왔다. 때마다 천사처럼 나를 도와주던 분들을 위해 어떤 보답을 해 드릴 수 있을까? 저들에게 보답할 방법을 찾을 수는 없으나 대신 내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으로 보답할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들의 사랑에 감사를 대신하자면, 이 세상에서 마지막 보람으로 나의 시신을 선한 사역에 바치는 헌신이다.
지극한 정성을 모아서 드릴 임종 기도는, 우리 부부가 임종한 후 우리의 시신을 의학연구용으로 다 함께 기증하기로 서원하는 일이라고 고백한다. 끝으로 이러한 간증이 삶을 축하하는 아름다운 연출의 찬가이기를 희망한다.
“하나님의 은총과 성도들의 사랑을 보답하기 위하여 나의 시신을 해부용 도구로 바칩니다. 벌레같이 버려진 나를 성직자로 선택하시고 복음 사역을 감당하게 하신 하나님의 성총을 찬미합니다. 오늘까지 지켜 주시고 도와주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에 감사하여 나의 시신을 의대생들을 위한 임상 실습과 해부학 연구를 위하여 기증하고 뼈는 추려서 맹학교 해부용 도구로 바치고자 서원합니다. 아멘.”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