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광일의 전성기(3)
앞에서 살펴본 격려사와 이 인사말을 통해, 우리는 주식회사 광일의 역사를 왜 지금 이 순간 현재적 시점에서 되돌아보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역사는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다. 따라서 연표를 나열한 연혁은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라고 할 수 없다. 역사는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 바라보면서 느껴지는 현재의 느낌을 통해 더욱 풍성한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된다. 그런 입장에서 바라본 주식회사 광일의 역사는 ‘참으로 보람이 되어 다가오는 지난 40년’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그 40년 여정은 바로 지금의 성공만을 위해 일방적으로 달려온 길이 아니었다. 고비고비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 낸 역사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다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 함께 해 온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보석 같은 노정이었다. 거기에서 힘이 들면 힘이 들수록 더 많은 힘을 짜내며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도전과 개척의 과정이었다.
주식회사 광일의 창립 40주년을 눈앞에 두고 이만영 회장이 더욱 강조한 것은 일의 성취에 대한 자신감과 확고한 신념이었다. 그것 역시 도전과 개척의 정신으로 헤쳐 나온 40년 역사를 통해 분명하게 몸으로 깨달은 결론이었다. 때로는 불안과 염려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발걸음을 떼기도 하였고, 그리고 때로는 과감하고 당당하게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기도 했었던 역사 속 기억들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경험이었다.
이만영 회장은 주식회사 광일의 매년 시무식과 창립기념일을 통해 이와 같은 광일의 역사 속에서 함께 했던 자신의 역사를 끄집어내면서 특별한 역사의 의미들을 추적했다. 그리고 4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시점이 다가오자 아무 것도 기댈 것 없이 오직 확고한 신념과 자신감만 믿고 시작했던 생생한 역사의 장면들이 떠오르게 되었다. 자신을 여기까지 이끌어 준 그 내면의 힘을 함께 의지하고자 다음과 같은 생각을 사원들에게 전했다.
“40여 년 전 그야말로 아무 것도 기댈 것 없던 상태에서 현재의 광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회고합니다. 일을 성취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과 굳은 신념입니다. 자신감과 확고한 신념이 없으면 현실에서 안주하려고 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성공의 확신이 없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리 만무하며 그 결과가 좋게 나올 수도 없습니다. 창립 40주년을 목전에 둔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회사의 계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우리 스스로 이루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현재 경기가 나쁘고 시장 경쟁이 치열할 때일수록 우리는 전심 전력을 다하여 우리 광일 발전에 사원 개개인이 활력소가 되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러한 주식회사 광일의 역사 그리고 이만영 회장이 모험과 도전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 온 역사를 더듬어 살펴보기 위해 창립 15주년을 기념하여 백년대계로 내세운 산업의 예술품이라는 광일의 목표가 어떠한 형태로 달성되어 왔는지 회고해 나가고자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전반적으로 아무 것도 없던 무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늘날 광일의 이름으로 세계와 미래로 뻗어 나가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는 마치 주식회사 광일의 엠블럼(emblem)이 상징하는 바와 대체로 일치한다. 여기에서는 막연하게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 ‘무(無)’에 들어 있는 특별한 계획과 섭리를 포착하고자 한다.
무에서 창조된 광일의 역사
주식회사 광일은 무엇인가 준비된 어떤 기반 위에서 태동한 기업이 아니었다. 자본과 기술을 미리 가지고 시장을 개척한 여타의 기업과는 다른 출발을 하였다. 따라서 그만큼 남들보다 더 어렵고 힘겨운 길을 걸어야만 했다. 기반 자체를 만들어 내야 했던 상황의 연속이었다. 뚫려 있는 길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없는 길을 만들며 달려야 했던 것이다. 그 과정을 이만영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지난 45년간 광일의 역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험하고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대기업 거래처를 개척하여 판매와 기술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가운데서 회사를 일으켜 몸으로 배우고 부딪쳐가면서 고난의 고비고비마다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의 저력 있는 45년 역사의 광일을 이루어냈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오늘의 기반을 이루어내기 위해 이미 현직에서 은퇴한 임직원들을 포함한 모든 광일 식구들의 피나는 노력과 땀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와 같이 2011년 4월 1일 창립 45주년 기념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주식회사 광일의 역사는 무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에는 ‘if’ 즉, ‘만약 그러그러 했었더라면’ 또는 ‘만약 그러그러하지 않았더라면’을 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가령 ‘주식회사 광일은 1966년 4월 1일 광일화학공업사로 창립되었다’라는 문장 하나로 간단하게 그 역사의 시작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
만약 이만영 회장이 결혼한 지 불과 한 달 남짓 된 무렵에 새색시를 고향에 두고 홀로 상경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지금의 주식회사 광일이 있었겠는가 하는 부분인 것이다. 그리고 만약 동창실업에서 수익 창출의 어려움으로 연구소를 폐쇄해야 겠다는 결정으로 이만영 회장의 일자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과연 그는 그 자리에 남아 무엇을 할 수 있었을 것인가.
정봉덕 장로
<염천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