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믿는 이의 표본, 두 분 장로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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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일어나자 모두들 피난을 떠나야 하는 바쁜 상황이었다. 그때 은행에서 빌렸던 돈을 갚겠다고 한 남자가 은행을 찾아간다. 은행 직원은 남자를 보고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말한다. “빌린 돈을 갚겠다고요? 전쟁 통에 융자 장부가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장부의 일부는 부산으로 보냈고, 일부는 분실됐습니다. 돈을 빌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그래도 갚으시게요?”

은행 직원의 말에 남자는 망설였다고 한다. 사실, 돈을 은행직원에게 준다고 해서 그 돈을 은행직원이 자기 주머니에 넣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는 이 성경말씀을 생각했다고 한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시 24:3-4).” 그는 돈을 갚았고 은행으로부터 영수증 한 장을 받는다. 

6·25전쟁이 끝난 후, 그 남자는 제주도에서 생선을 공급하는 군납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갈수록 물량이 많아지자, 그는 원양어선을 구입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래서 부산의 은행을 찾아 간다. 그러나 그 시대는 융자가 정말 ‘하늘의 별따기’였다. 융자를 포기하려고 할 때, 그 영수증 한 장이 모든 상황을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아! 바로 당신이군요. 피난 중에 빚을 갚은 사람이 있다고 전해 들었을 때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정직함은 은행가에서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답니다.” 남자는 융자를 받을 수 있었고 은행권의 신용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사업을 펼쳐 나갔으니 그가 바로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의 설립자이자, 한국기독교 실업인 회장을 맡았던 故 최태섭(崔泰涉, 1910~1998)장로이다. 

최태섭 장로의 동역자로서『신일학원(신일중고등학교)』을 세운 네 형제분이 있으니 이영수(李榮守), 인수(仁守), 봉수(奉守), 광수(廣守)의 네 분이다. 학원설립당시『신일학원』의 이사장은 셋째 이봉수(李奉守, 1917~2000) 장로였다. 『신일학원』의 모기업(母企業)은 『신일기업』이었는데 그 산하에 ‘대한모방’과 ‘동아염직’이 있었다. 특히 『신일학원』을 세운 설립자 네 형제는 월남한 분들로 맨손으로 여러 개의 대기업을 일군 기적의 주인공들이었다. 

1959년에 발행된 某 신문의 특집기사에 의하면 당시 『신일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점유했던 위치가 매우 컸음을 밝히고 있다. 그때 ‘대한모방’과 ‘동아염직’의 직공수가 1,700명에 이르렀으며 이봉수 장로는 기독교신앙을 소중히 여기고 대한모방 제1공장, 제2공장, 그리고 동아염직의 전직원들이 요일별로 직장에서 매주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신일기업』은 1952년 피난시절, 부산 남포동에서 『신일중고등학교』설립기획단을 발족했으며 서울로 환도(還都)후에 영등포에 ‘동아염직’과 ‘대한모방’을 순차적으로 세우고 꾸준히 발전시켜 대기업이 되었다. 두 공장 직원들을 위해 『영은교회』를 세웠는데 박조준 목사가 담임으로 시무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56년 동대문 지역에 『동신장로교회』를 창립하였는데 이봉수 장로는 승용차로 교회정문에 도착하면 하차하여 교회구내는 반드시 걸어갔다는 일화를 통해 이 어른이 예배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셨는지 짐작이 간다.

신일중고등학교는 1967년 3월에 개교하여 재단이 온 정성으로 후원하고 교사들이 열심히 가르친 덕분에 당시 학교의 수준을 가늠하던《대학입학예비고사》에서 제1회 졸업생의 합격률이 99.12%라는 신화를 낳게 되었다. 

『한국유리공업(주)』의 최태섭 회장은 『신일학원』의 이사로, 『신일학원』의 이봉수 이사장은 『한국유리공업(주)』의 이사로 참여하였는데 당시 전해 듣기로는 이 장로께서 상당한 주식의 지분을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1970년대 초, 어느 해인가, 신일중고등학교 교사와 직원이 두 대의 학교버스에 분승해서 『한국유리공업』을 방문, 공장을 견학하면서 ‘교환(交驩)의 시간’을 가진 바 있다. 최태섭, 이봉수, 이 두 분 장로님의 인간적인 우애는 친형제 이상이었고 더욱이 신앙적 동지로서 상부상조한 역사는 지금까지 전설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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