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 여행의 중심점이 김포공항과 인천국제공항으로 옮겨갈 때까지 서울역은 20세기 내내 많은 추억을 남기는 낭만적인 이름이었다. 지난날 사람들이 여러 가지 목적으로 상경할 때 서울역은 반가운 만남의 장소였고 인생의 꿈을 펼치는 출발점이었다. 명절이면 서울역 광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온갖 지역 사투리의 교향악이 울려 퍼졌다.
남도여행 일정이 취소되어 승차권환불을 인터넷으로 하는 대신 일부러 오랜만에 서울역에 가 보았다. 용무를 마치고 다시 지하로 내려가 전철을 탈까 하다가 역 밖으로 나와 주변을 거닐었다. 맨 먼저 눈에 띈 것은 아주머니 한 분이 노숙자가 주변에 흩으러 놓은 잡동사니를 종량제 봉지에 집어 담는 모습이었다. 다가가서 잠시 도와드린 후 벽돌집 구역사 쪽으로 가니 이곳은 오로지 노숙자들의 영역이다.
양지바른 벽 아래 여러 명이 모여있고 그중 리더 격인 듯한 사람이 가운데 앉아 무어라 욕설을 섞어 고함을 지르고 그 앞에 한 사람이 몸을 한껏 숙인채 질책을 당하고 있다. 군데군데 누워있거나 앉아있는 노숙자들이 여럿인데 광장 한편으로 긴 줄이 늘어서 있기에 가 보니 코로나19 선별검사를 하고 있다. 다른 쪽에서는 선교단체에서 나온 듯한 일단의 젊은이들이 그날의 활동을 위한 위치를 잡으려고 플래카드들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나선 김에 광장 끝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 「2017 서울로」 고가도로공원으로 들어섰다. 곧 서울역전 십자대로의 정중앙에 서니 동서남북이 확 트였는데, 북으로 남대문 넘어 삼각산 봉우리는 건물에 가려 안 보이나 남으로는 삼각지, 용산길이 뻗어 있다. 가장 변화가 많은 것은 동편으로 근년에 세워진 철골유리 고층건물들이 임립해 있다. 남대문경찰서마저 유리로 리모델링을 해서 모습을 일신했고 그 옆으로 옛 대우센터의 육중한 갈색 직육면체가 남산 아래자락을 감싸고 있는데 대우가 해체되어 지금은 누가 임자인지 모르겠다.
커다란 화분들에 심기운 꽃나무들이 高架공원 위에서 봄의 향기와 온기를 내뿜는 사이를 걸어가며 작년에 작고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생각한다. 어딘가 그의 이름이 들어간 표지가 있을 터인데 얼른 찾지 못하겠다. 노랑조끼 입은 관리인이 서 있기에 스마트폰을 내밀며 사진을 한장 찍어달라 했더니 “코로나 때문에 대민접촉이 금지됐습니다”고 거절한다. 이들의 역할이 혹시나 3,4층 높이 고가정원에서 어깨높이 투명 난간을 넘어 누가 뛰어내리는 것을 예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대로 셀카를 찍고 천천히 나아가 고가도로 끝에서 지하철역으로 승강기를 타고 내려갔다.
「2017서울로」는 적으나마 박 전 시장의 업적이다. 이제 시장이 바뀌었고 1천만 인구 수도행정의 새 책임자가 또 어떤 업적을 이루려고 애쓸지 모르나 사실 시장이라는 직책이 주민의 삶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서울역은 변화하여 지하 7층에서 인천공항행 열차가 떠나는데 밖의 노숙자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장의 소속 정당이 바뀌고 캐치프레이즈도 달라지고 광화문 광장을 다시 뜯어고쳐지고 하여도 그런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 옛날 서울역 개찰구를 나와 그리던 사람을 만나고 하던 때, 둘이서 함께 왔다가 역구내로 서둘러 들어가는 정든 이의 뒷모습에 손 흔들던 그 때가 그리워진다.
김명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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