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해자라고 하면 문자를 제대로 해독할 수 없는 사람을 뜻한다. 옛날에는 문맹자라고 불렀는데 이 용어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어 비문해자라는 단어를 요즈음 사용하고 있다. 한글이 제창되기 전에는 우리나라의 양반들은 글을 읽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백성들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조선시대와 달리 무과시험이 없어 대부분 군공과 특채로 무관을 선발했기에 일반 서민이나 천민 출신들이 많았고 이들은 엄연히 관료로서 귀족계층이었음에도 대부분 문맹일 수밖에 없었다. 문자 해독을 할 수 있는가 여부는 사회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과거 이탈리아에서는 문맹인 사람들에게는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선거권은 ‘21세 이상인 남성으로서 글을 아는 자’에게만 부여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는 문맹퇴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 나라 중에 하나로 1950년대생 이후의 문맹은 거의 없지만 글을 못 읽는 일부 노인들이 여전히 있는 이유는 일제가 아예 한국어 교육을 못하게 막아버려서 한글을 못 배우신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맹률에 대해 통계청이 공식적으로 잡은 통계는 1966년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1960년도에 이미 의무교육 취학률이 96%에 달하면서 문맹률을 조사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져, 더 이상 기초 조사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서는 문맹률을 약 1% 이내 정도로 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 2017년 국민일보 기사를 보면 읽을 수는 있으나 뜻을 해독하지 못하는 인구가 성인 100명 중 7명은 비문해자의 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글자를 읽을 수 있는데 뜻을 모르면 얼마나 답답할까. 독일어의 경우도 읽을 수는 있어도 뜻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과 비슷한 의미이다. 문자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지 뜻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경우 의사전달이 불가능한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청인의 경우 말을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산속에 떨어져 살아 늑대와 같이 산 소년이 말을 못한 채 발견된 적이 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의 경우 말은 자연적으로 배우며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농인이 교육을 안 받고 집에 홀로 남겨져 지내는 경우 수어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하며 가족들과는 그들만이 통하는 가정수어로 겨우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하며 지낼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수어를 모르는 농인이 수어를 잘 하는 농인을 만나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농인의 입장에서도 그들의 언어인 수어를 하여도 통하지 않는 농인을 만나면 상당히 당황스러울 것이다. 수어는 보이는 언어로 수어만이 가지고 있는 문법 체계가 있으며 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같은 언어권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야 한다. 청인이 말을 하면서도 아나운서처럼 또박또박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농인들도 자신의 수어가 상대방에게 좀 더 명확하게 전달 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연구하며 자신들의 언어를 다듬어 가며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수어가 사랑받는 언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수어를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할 것이다. 문해율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수어를 통한 언어가 가지는 개념을 확실히 인식하면서 문자로서의 독해력이 증대되어야 문자언어에 대한 쓰기, 읽기의 수준이 향상될 것이다.
안일남 장로
<영락농인교회·사단법인 영롱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