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사시는 연로하신 아버지가 서울에 사는 아들네에 올라와 한 주간 지내는 가운데 깊은 상처를 받고 실망을 느끼고는 아들의 책상 위에 메모지 한 장을 써 놓고 시골집으로 내려가 버리셨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5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어디세요?” “어디긴 어디냐? 시골집에 내려왔다.” “아니, 내려가시면 가신다고 말씀이라도 하셔야지요? 그런데 책상 위에 써 놓은 ‘5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는 무슨 뜻이에요?” “이 놈아, 너 정신 좀 차리고 살아야겠더라! 내가 네 집에 있는 동안 보니까 네 집의 1번은 네 아들놈이고, 2번은 네 딸년이고, 3번은 네 마누라고, 4번은 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새끼고, 네가 5번이고 내가 6번이더라! 그래서 5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고 했다! 내 말이 틀렸냐?……”
오래전 한국일보 주필이었던 장명수 칼럼에 나온 이야기이다.
필자는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아무리 말세의 마지막 때가 다 되었다고 하지만 어떻게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주며 평생토록 뒷바라지를 해 주신 부모님이 강아지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것이 실제로 오늘의 서글픈 현실이다! 그래서 성경은 부부의 행복의 회복(엡 5:22-33)에 이어서 자녀 양육(엡 6:4)보다도 부모 효도(엡 6:1-3)를 강조하고 있다. 가장 먼저 부모님께 순종하라고 명령하신다.(엡 6:1) 이것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마음을 평안하게 모시며 지난 날의 불화의 관계조차도 회복하라는 ‘정신적 효도’를 명령하신 것이다. 우리 자녀들이 아무리 부모님께 물질적으로 효도를 잘해도 부모님의 마음이 평안하시지 못하면 다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지난 날 우리의 부모님이 “죽을 먹어도 하루라도 속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푸념을 많이 털어놓으셨던 것이다. 이제라도 주 안에서 부모님께 순종함으로 여생을 행복하게 모셔야 할 것이다.
이어서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명령하신다.(엡 6:2) 부모님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질로도 부족함이 없이 채워드리라는 ‘물질적 효도’를 강조하신 것이다. 많은 때 우리가 자녀에게 해 주는 것의 1/10, 1/100, 1/1000만 부모님께 해 드려도 효자 소리를 들을 것이다. 자식을 위해 일생을 희생하시고 고생하시며 다 쏟으시고 더 해 주실 힘이 없으실 때 떠나가시는 분들이 우리의 부모님이시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서는 온갖 정성을 다 쏟으면서도 부모님의 은혜는 다 잊어버리고 부모님 살아계실 때는 불효만 하다가 왜 떠나가고 나신 다음에야 뒤늦게 이것을 깨닫고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것일까? 이제 또 다시 어버이주일이 다가온다. 양가 부모님이 다 떠나가신 고아로서 세월이 흐를수록 왜 이렇게 쓸쓸함이 더해질까? 하늘나라에 계시는 부모님께 대한 그리움이 깊어질수록 더욱 뜨겁게 가슴에 와닿는 말씀이 떠오른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김의식 목사
<치유하는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