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믿는 사람들이다. 기독교는 믿음, 소망, 사랑을 3대 성훈(聖訓/고전 13;13)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믿음이라고 해서 똑같은 것은 아니다. 작은 믿음(마 6:30)도 있고 큰 믿음(마 15:28)도 있다. 연약한 믿음(롬 14:1)도 있고 굳건한 믿음도 있다.(골 2:5) 갈대처럼 흔들리는 믿음(딤후 1:5 딤전 1:19)도 있고 강철같은 믿음도 있을 것이다. 죽은 믿음(약 2:26)도 있고 영혼을 구하는 믿음도 있다.(히 10:39) 신령한 믿음도 있고 어린아이같은 믿음도 있다.(고전 3:1)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앎’이 자신의 ‘삶’으로 연결되는 전 과정을 포함하는 포괄적 용어이다. 그래서 성숙한 믿음을 가지려면 자칫 추상적이기 쉬운 믿음을 구체적인 단어로 재해석(정립)해야 한다. 그렇게 안 하면 ‘믿음’은 추상명사로 끝나서 현실적 삶과 유리된 공허한 이론이나 현실도피로 빠질 수 있다. 은혜, 사랑, 자비, 긍휼 등의 용어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만큼 성경공부를 많이 하는 나라도 없고 우리나라만큼 성경에서 배운 것을 실제 삶에 적용하지 않는 나라도 드물다(이론과 실제가 유리돼 있다/앎과 삶이 각각 간다).
예배 후에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라는 말의 속뜻이 무엇인가? 설교 듣다가 공감이 갔거나, 마음이 찡했거나, 눈시울이 뜨거워지면 은혜 받은 것인가? 그러나 은혜는 감정변화로만 이해되어선 안 된다. ‘주님의 영광만 드러나게 하소서’라는 기도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귀한 은혜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삶에서 주님의 영광만 드러나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때 주님의 영광만 드러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앞으로는 정직하게 벌고, 정직한 소득으로 만족하며 살겠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걸림돌이 되어 새롭게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늘지 않는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볼 때 믿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또 잘 믿고 싶은데 은혜받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믿음’이란 추상명사를 조금 더 구체적인 개념으로 정의해 보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이해되어야 실제 상황에서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①믿음은 ‘순종’이다 : 순종은 두 종류다. 하나는 하나님 말씀(성경말씀)에 대한 순종이고, 다른 하나는 주어진 상황(Situation)에 대한 순종이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다. 나의 삶속에서 나와 함께 계시다. 그런데도 사업 실패, 자녀의 진학 실패, 나 자신이 병들면 원망부터 한다. 이럴 때엔 그 상황을 수용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것을 뚫고 나가라고 주신 것이다. ②믿음은 ‘용기’이다. 순종은 용기가 있어야 할 수 있다. 처녀마리아에게 “아이를 낳을 것이라”(눅1:31-38)고 할 때 율법에 의해 돌 맞아 죽어야 하는 일인데도 그것을 수용했다. 대단한 용기다. 손해를 감수하면서 정직을 지키는 것이 용기다. ③믿음은 ‘시선’이다. 우리의 시선이 늘 하나님께 고정돼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모세, 이스라엘 백성, 다윗, 심지어 예수님까지도 공적 삶 이전에 광야의 시련을 겪게 했다. 이때 하나님 외의 어느 것도 보지 않아야 한다. ④믿음은 ‘다루어짐’이다. 내가 하나님을 다룰 수는 없다. 하나님에 의해 내가 다루어져야 한다(to be controlled). ⑤믿음은 ‘신실함’이다. 믿음은 헬라어로 ‘피스티스’(신실)이다. (마 21:22)의 믿음을 ‘신실’로 바꾸어 읽어보라. ⑥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에 의해 컨트롤되고 신실해지면 나의 언행(삶)이 다른 이의 눈에 보이게 돼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구체적 현상이 된다. 믿음이 있으면 말하지 않아도 남들이 먼저 알게 돼 있다. ⑦믿음은 ‘자기발견’이다. 믿음은 남에게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봐도 달라진 것이 느껴지고 발견된다. 주님이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그 후 믿음이 생기면 달라진 자기를 스스로도 발견하게 된다. ⑧믿음은 ‘자기 사랑’ 또는 ‘자기 섬김’이다. 자신의 값어치를 발견하면 자기를 사랑하고 아끼며, 자신을 더 고급스럽게 섬길 수 있다. 자기 존중이 생기는 것이다(self-esteem). ⑨믿음은 ‘자유’이다. 이 세상의 모든 유혹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 아무데나 가지 않고 아무것이나 먹지 않고 아무 짓이나 하지 않게 된다. ⑩믿음은 곧 ‘삶’이다. 하나님에 대한 ‘앎’이 순종, 용기, 시선, 신실함, 자기발견, 자기가꿈, 자유함, 자기섬김으로 이어지면 우리 삶은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