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광일의 전성기(8)
광일의 옛 이야기
회사 설립 승인과 유화제의 개발
1960년대 한국 사회의 기업환경은 참으로 어려웠다. 특히 중소기업을 육성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중소기업이 활성화되는 환경이 아니었기에 창업하여 회사를 든든히 세워 나간다는 것은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실험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조금씩 만들어 가고 스스로 세워 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당시에는 회사를 창업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행정적인 절차에 있어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곤 했다.
광일의 경우에도 그랬다. 문래동에서 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행정적인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고 회사를 옮겼는데, 그것이 무단 이전으로 간주되어 회사 설립이 취소당하게 된 것이다. 그때는 대부분의 회사가 제대로 주무 부서와의 행정 업무를 철저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의 사연에 대해서 이만영 회장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이런 식품첨가물 제조회사는 그 당시에도 별로 없었어요. 당시에는 한정되어 있었어요. 처음에는 다들 보사부 승인 없이 하고 그랬는데, 우리는 처음부터 보사부 승인을 받아서 시작했어요. 문래동에 있을 때 행정을 잘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공장을 옮긴 적이 있었는데, 무단 이전이라는 이유로 회사가 취소되었어요. 그래서 이것을 해결해 보려고 보사부에 갔더니 얘기가 잘 안 됐어요. 그래서 감사원에 가서 얘기를 했더니 보사부 감사가 얼마 후에 있으니 감사장으로 와보라고 해서 갔었지요. 그때 다행히 감사원 중진을 만나서 대화를 해보니까 거기서 해줄 수 있는 방법은 행정 취소가 된 우리 회사를 다시 복구할 수는 없고 회사를 자진 해산한 다음 새로 회사 창설을 신청하면 승인을 받을 수 있게 해 준다고 했어요. 그래서 회사를 취소하고 다시 설립하는 방식으로 승인을 받게 되었죠. 법적인 공백기는 얼마 안 됐어요. 사전에 상의를 해서 승인을 받게 된 것이었으니까요.”
당시 이만영 회장이 개발한 제품은 식품첨가물인 유화제였다. 유화제란 아주 단순히 설명하면 물과 기름이 잘 섞여질 수 있도록 만드는 물질로 빵이나 라면, 아이스크림 등 식품 제조에 들어가는 첨가물이었다. 식품에 극히 소량이 들어가지만 꼭 필요한 제품으로 광일에서 개발하기 전까지는 전량을 수입에 의존했던 일종의 식품첨가물이었다.
다행히 기술에 대한 특허권을 확보한 상태였지만 유화제를 개발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게다가 1960년대 한국의 식품시장은 규모가 미미했기 때문에 유화제의 수요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이전에 유화제를 개발하던 회사들도 그런 이유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개발을 접었다.
그러나 이만영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유화제는 사람이 먹는 식품을 위해 꼭 필요한 첨가물이었고 게다가 수입품이라는 점이 동기 부여가 되었다. 시작은 미약할지 모르지만 장래성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떻게든 수입품을 대체할 수 있는 좋은 품질의 유화제를 만들어 내겠다고 결심했다.
제대로 된 연구소나 공장도 없이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갖게 된 것인지는 본인도 설명하지 못한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고 터무니없는 일이었지만 그것은 사업가의 개척정신과 젊은이다운 패기였다고 회고한다. 그렇게 이만영 회장은 무엇이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도전하는 강인한 정신으로 밀고 나갔다.
정봉덕 장로
<염천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