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어떤 교회에 복을 내려 주실까? 돈이 많고 큰일을 많이 하고, 교인 수가 많고 성전을 크고 아름답게 지은 교회일까? 아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시는 교회는 주의 종이 전하는 말씀에 기쁨으로 ‘아멘’으로 화답하는 교회이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 밭이 좋으면 저절로 복은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주님은 옥토와 같은 마음에는 반드시 말씀이 씨앗이 잘 들어가 30배와 60배와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복 받는 교회는 무엇보다 마음 밭이 옥토와 같이 준비된 교회이다.
오늘 본문 말씀 15절에 보면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에게 전에 그들이 가졌던 복된 신앙자세가 어디 있느냐고 책망하고 있는 장면이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교인들이 거짓 선지자들로 인해 복음에서 속히 떠나 율법주의에 빠진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했다. 처음 바울이 그곳에 복음을 전했을 때엔 그들이 복음으로 구원받은 은총에 대해 기뻐하고 감사하고 감격했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15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그들이 할 수만 있으면 자신들의 눈이라도 빼어 바울에게 줄 수 있을 정도로 주의 종을 사랑하고 헌신적이었다. 그런데 바울이 갈라디아교회를 떠나 다른 지역에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사이에 그들의 태도가 확 달라진 것이다. 전에는 그렇게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넘쳐 사랑이 가득했던 교회가 지금은 인색함과 비난과 지적과 분노와 아픔과 분열이 가득한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 심령에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신 거짓 선지자들이 전해준 율법주의를 가지고 서로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자기 의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여러분, 사람이 예수님 안에 있으면 은혜로 판단하다. 그러나 예수님 밖에 있으면 인간적인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다.
사실 사도 바울을 볼 때 인간적으로는 시험에 들 수 있는 연약함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가진 고질적인 질병 때문이었다. 그 질병이 정확하게 무엇이었는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탄의 가시’라고 표현할 정도로 아주 고약하고 무서운 질병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바울은 자신의 질병을 치유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하나님께 세 번씩이나 기도하였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 후 사도 바울은 자신 몸에 있는 약함은 교만하지 않고 더 주님을 의지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히려 감사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기준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그 마음 중심이 겸손하고 하나님을 온전한 믿음으로 의지하는 자세임을 알 수 있다. 처음 갈라디아교회 교인들이 신앙생활할 때에는 바울의 약함을 알면서도 그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아멘’ 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던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은 아무리 이 세상 기준으로 볼 때 부족하고 보잘 것 없어도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면 위대한 주의 종으로 쓰실 수 있으신 분이시다. 성경에 보면 다윗도 다들 무시했던 어린 소년이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골리앗 장군도 물리쳤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무디 목사님 같은 경우는 구두수선공에 불과한 무식한 사람이었지만 성령충만을 받아 귀하게 쓰임 받고 수백만 명의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대부흥사가 되었다. 이처럼 아무리 마른 막대기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손에 붙잡힌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위대한 인물로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바울이 바로 그런 주의 종이었다. 그러면 갈라디아 교인들이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고 끝까지 바울을 귀한 종으로 섬겼어야 했다. 그것이 그들이 복을 받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이 변질됨으로 바울을 배격하고 교회가 시끄러워지는 안타까운 처지가 된 것이다. 여러분, 이런 교회에 주시는 말씀이 요한계시록 2장 4절 이하에 나온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여러분, 우리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 복음에 대한 사랑,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에 대한 사랑, 그리고 교인들에 대한 사랑, 이 사랑이 무너질 때 성령의 촛대도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늘 회개하고 처음 사랑과 행위를 회복하는 영성을 가져 복된 믿음의 자리에 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신상훈 목사
<태평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