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위량의 제 2차 순회 전도 여행 (67)
구미에서 상주까지 (15)
1893년4월 26일 수요일 저녁에 낙동에서 쓴 일기에 보면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탁지일이 번역한 배위량의 일기 중에서 1893년 4월 26일 수요일 밤, 낙동에서 쓴 일기는 아래와 같다.
4월 26일 수요일 밤, 낙동
대구를 떠나 우리는 성주 읍내와 인동 읍내를 왼편에 두고 지나갔다. 성주는 동래처럼 중요한 요지라고 한다. 밥값은 한 상에 35~60전 정도다. 마부 한 사람이 몸이 안 좋은 관계로, 오늘 50리밖에 움직이지 못했다.
길가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리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들은 먹고사는 문제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서 전도사가 애처로워 보인다. 그는 며칠 전에 조선이 일본과 중국의 속국이 되어 간다며 애통해하면서, 오늘날 이 백성의 우둔함과 어리석음이 이러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그는 마음 아파했다.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볼 수 없고, 귀가 있어도 듣거나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유일한 방법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도록 주입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백성들이다. 이들은 다른 언어는 전혀 모른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소망할 뿐이다.
그런데 이상규가 옮긴 배위량의 일기 중에서 1893년 4월 26일 수요일 밤, 낙동에서 쓴 일기는 아래와 같다.
4월 26일, 수요일 저녁, 낙동
우리는 일찍 도착했다. 마부 중 한 사람의 병으로 오늘은 겨우 50리밖에 여행하지 못했다. 도중에 만난 사람들은 우리가 전한 것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하는 말을 통하여 볼 때 죽음 이후에 대한 비전이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하는 말을 통해 볼 때 죽음 이후에 대한 비전이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불쌍한 서 씨, 며칠 전에 그는 한국인들이 일본과 중국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음을 탄식했다. 이 백성들의 우둔함과 어리석음 때문에 그는 하루에도 몇 번의 이런 탄식을 했고, 죽음 이후의 문제에 무심한 한국인을 안타까워하는 이 외국인의 심정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는 있으나 들을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그들을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계속 반복하여 가르치는 일 뿐이다.”
불쌍한 사람과 백성들, 그들은 다른 나라의 언어를 알지 못한다. ‘하나님, 속히 그들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선산 읍내를 지나 왼쪽 방향으로 갔고, 강을 건넜다. 서울로 가는 길은 이곳에서 낙동의 서쪽 지역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김천(Kim San)은 이곳에서 80리나 떨어진 아래쪽에 있다고 들었는데, 그곳은 성주 쪽으로 흐르는 강의 서쪽 지역에 속한 곳이다.
1893년 4월 26일 선산 해평을 출발한 배위량이 같은 날 기록한 일기인데도 몇 가지 점에서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4월 26일에 쓴 배위량의 일기는 1893년 4월 26일 수요일 낙동에서 쓴 것은 확실하다. 두 가지 버전 모두 이것에 관해서는 일치한다. 일기를 쓴 시간을 배위량은 ‘evening’이라고 했는데, 탁지일은 ‘evening’을 ‘밤’으로 번역하고 이상규는 ‘저녁’으로 번역했다. ‘evening’은 통상 저녁 시간대를 의미하는 말이지만, 영어의 ‘evening’이 ‘밤’의 뜻을 가지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evening’을 ‘밤’으로 번역한다 해도 틀린 번역은 아니다. 한국말로도 ‘저녁’이란 단어가 밤을 도외시하는 말은 아니다. 저녁과 밤을 명확하게 언제까지 저녁이고 언제부터 밤이란 개념이 모호한 채로 있다. 계절마다 날마다 저녁과 밤을 구분하는 개념적인 구분이 있다면 모를까, 통상으로는 저녁 시간 그러면 이른 밤까지 포괄한다.
I. 배위량의 4월 26일 일기의 두 가지 버전에서 같은 내용은
1. 낙동에서 쓴 일기란 사실
탁지일 번역 일기 : 4월 26일 수요일 밤, 낙동
이상규 번역 일기 : 4월 26일, 수요일 저녁, 낙동
2. 해평에서 낙동까지 오는 노중에서 전도한 사실
탁지일 : 길가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리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들은 먹고사는 문제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이상규 : 도중에 만난 사람들은 우리가 전한 것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하는 말을 통하여 볼 때 죽음 이후에 대한 비전이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3. 서상조가 한국의 현실을 마음 아파하고 있음을 전하는 기록
탁지일 : 서 전도사가 애처로워 보인다. 그는 며칠 전에 조선이 일본과 중국의 속국이 되어간다며 애통해하면서, 오늘날 이 백성의 우둔함과 어리석음이 이러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그는 마음 아파 했다.
이상규 : 불쌍한 서 씨, 며칠 전에 그는 한국인들이 일본과 중국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음을 탄식했다. 이 백성들의 우둔함과 어리석음 때문에 그는 하루에도 몇 번의 이런 탄식을 했고, 죽음 이후의 문제에 무심한 한국인을 안타까워하는 이 외국인의 심정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4. 배위량이 당시의 한국 현실을 안타깝게 여김
탁지일 :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볼 수 없고, 귀가 있어도 듣거나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유일한 방법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도록 주입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백성들이다. 이들은 다른 언어는 전혀 모른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소망할 뿐이다.
이상규 : “그들은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는 있으나 들을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그들을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계속 반복하여 가르치는 일 뿐이다.”
불쌍한 사람과 백성들, 그들은 다른 나라의 언어를 알지 못한다. ‘하나님, 속히 그들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