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긴과보아스] 마지막 때 드려야 할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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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영적 호흡이라고 한다. 성경은 우리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명령하실 뿐만 아니라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 26:41)고 끊임없이 말씀하셨다. 계속해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고 강조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일에 바쁘고 피곤하고 또 코로나19의 두려움에 빠져서 영적 생활의 가장 강력한 무기요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만능 열쇠인 기도가 무너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누가복음 18장에 이 말세 마지막 때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가 나온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제 삼시, 육시, 구시(오전 9시, 정오 12시, 오후 3시)에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다. 율법에 충실한 바리새인은 정상적인 유대인의 기도 자세대로 서서 기도했지만 교만에 가득 차서 따로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랍비들이 매일 첫째 이방인으로 지음 받지 않은 것, 둘째 하류 인생이 아닌 것, 셋째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였듯이 감사 역시 유대인의 기도의 불가결한 요소였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하고 다른 사람과 세리까지 비교하면서 자기 자신을 내세우며 감사를 드린다.

더 나아가 “나는 이레에 두 번씩(당시 유대인들은 월, 목요일)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하고 자신의 의로움을 한껏 내세운다. 우리도 기도를 통해 자신의 의로움을 한껏 내세우고 감정이나 풀며 은근히 상대를 비하하지는 않는가? 그것은 자신을 하나님과 같이 의로운 체하며 남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교만한 바리새인의 기도의 내용과 다를 바가 뭐가 있는가? 그것을 어떻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가 아니고 자신의 신세타령이나 감정의 넋두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에 반해 세리의 기도의 자세와 내용은 어떠한가?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한다.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하나님의 용서를 간구하며 자신의 죄악을 고백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교만에 빠진 바리새인이 아닌 겸손한 세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신다. 바로 이 세리의 기도는 말세 마지막 때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큰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나 우리나라나 민족이나 열방 가운데 바로 이 세리의 기도가 너무도 절실한 것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우리의 인생의 모든 문제들이 주님으로부터 풀려질 것이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김의식 목사
<치유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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