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289)존 데이비슨 록펠러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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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살의 록펠러는 소화기 질환으로 머리카락과 속눈썹이 빠지는 탈모증을 앓았다. 윙클러는 ‘그는 의사의 지시로 사람의 젖을 먹고 지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태였다’고 썼다.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록펠러는 흔치 않은 선천적이고, 신경성 대머리 증세의 일종인 탈모증에 걸렸으며 그의 흉한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쓰다가 나중에는 개당 500달러의 가발을 몇 개로 죽을 때까지 은색 가발을 썼다. 그는 척추에 정골 요법을 받았다.
록펠러는 거래가 잘 됐다는 소식 말고는 아무 것도 그의 표정을 밝게 하지 못했다. 큰 이익을 올리게 되면 그는 모자를 벗어 바닥에 내던지고 이리저리 뛰면서 ‘승리의 춤’을 추었다. 그러나 돈을 잃으면 몸이 나빠졌다. 원래 강철같이 단단한 몸을 타고났다. 그런데 한참 때인 53세에 벌써 그는 어깨가 축 늘어지고 걸을 때 휘청거리는 사람이 됐다. 그의 전기를 쓴 작가 존 T. 플린은 “거울을 들여다보면 그의 눈에 노인이 보였다.”고 했다. 그는 기관지, 소화기관, 신경계통이 생겼고, 궤양도 앓고 있었다. 비거 박사는 “병이 조금만 더 심했다면 죽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병으로 1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다. 사업가 록펠러는 유머도 없이 살았다. 세월이 지난 뒤에 “나는 내가 거둔 성공이 단지 일시적인 것으로 그칠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하지 않은 채로 베개에 머리를 뉘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마크 해너가 “그는 다른 모든 면에서는 제정신이었지만 돈에 대해서는 미친 사람이었다.” J. P. 모건도 록펠러와 사업상의 거래를 하는 것을 주저한 적이 있다. 그는 빈정대기를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와는 어떠한 거래도 하고 싶지 않다.” 고 했다. 록펠러의 동생도 그를 싫어해서 가족묘지에 묻힌 자기 자식들을 다른 곳으로 이장했었다.
의사는 그에게 충격적인 말을 했다. 한쪽에는 돈과 걱정, 다른 한쪽에는 목숨이 있는데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의사는 ‘죽든지 아니면 은퇴하라’고 했다. 록펠러가 은퇴할 경우 생활규칙 세 가지를 제시했다.

1) 근심하지 말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말라.
2) 긴장을 풀고 쉬어라. 옥외에서 가벼운 운동을 하라.
3) 음식을 먹을 때 조심하라. 배가 차기 전에 숟가락을 놓아라.

그는 의사의 지정된 식단에 따라 먹고 운동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록펠러는 이 규칙들을 잘 지켰다. 그리고 은퇴했다. 골프를 배웠고, 정원을 열심히 가꾸었다. 이웃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었다. 카드게임도 즐기고 노래도 불렀다. 그는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번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를 생각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청교도적인 어머니의 믿음을 따라 살았다. 어머니의 신앙적 유산은 세 가지였다. 첫째로, ‘십일조를 해야 한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서 교회에 다녔다. 용돈을 20센트씩 받았는데 그중 십일조를 내는 습관을 키워주었다. 둘째로, ‘교회에 가면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한다.’ 어머니와 함께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드렸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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