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광일의 전성기(14)
용산 본사와 아산 공장
이러한 주식회사 광일의 체제가 구축된 것은 1987년 새해 신년사에 잘 나타나 있다. 이만영은 이를 ‘대역사’로 전개하고 추진한 것이다. 이는 광일 창립 20여 년의 세월을 통해 이룩될 수 있었다.
“지난해에도 사원 여러분들이 전심전력으로 애써 노력한 결과로 사세가 확장되었고 서울공장을 아산공장으로 이전하는 대역사를 큰 무리 없이 끝마치게 된 일에 대해서 사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우리 광일 사원들은 지난 20여 년간 피차 사랑으로 뭉친 한 가족적인 분위기와 좋은 전통을 이어가며 그 기반을 다져가고 있습니다. 서울 본사와 아산공장과 부산사무소에서 각기 자기 본분과 책임을 다하는데 최선을 다하며 일심동체로서 사원 상하 간에 사랑과 존경심으로 화기애애한 직장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도 애사심 못지않게 애향심을 가지고 다방면으로 사회 발전을 위해 봉사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광일 체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광일생산기술연구소’를 과학기술처 장관의 허락을 얻어 신설하게 되었다. 이 연구소는 아산공장에 설치되었으며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기술 개발에 역점을 두고 운영되었다.
‘광일생산기술연구소’를 향한 이만영 회장의 기대는 매우 컸다. 이 연구소야말로 광일의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따라서 새로운 체제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연구소의 비중을 크게 두고 있었다. 이는 당시 세계적인 기업환경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연구소는 곧 고도의 첨단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전초기지였다.
“현대 기업은 고도의 기술개발로서만이 존립할 수 있습니다. 고도의 첨단기술을 개발하여 받아들이지 못하면 기업이 뒤떨어지게 되고 마침내 도산 위기에 봉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회사는 앞으로 기술연구소에 큰 비중을 두어 연구비도 더욱 많이 투자할 계획입니다. 금년에 연구소 건물을 아산공장부지 안에 약 1억 원 정도 예산으로 착공할 예정입니다. ”
이와 동시에 이만영 해외 선진 기업의 상황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독자적인 첨단 기술이 세계 시장을 통해 인정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해 온 방식대로 하면서 안주하게 되면 곧바로 도태되고 마는 치열한 기업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광일생산기술연구소’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이를 위해 이만영 회장은 중견사원들로 하여금 기회가 닿는 대로 외국에 직접 나가서 보고 배우는 역할을 맡겼다.
이와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유는 주식회사 광일이 견고한 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이만영 회장이 생각하는 산업의 예술품으로서의 광일은 시대적 환경에 따라서 갑자기 기업 형태를 바꾸거나 업종을 변경하는 임시방편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광일이 창립되는 순간에 결정된 일이었다.
당시 식품첨가물의 불모지였던 한국의 상황에서 개척자로서의 첫 걸음과 함께 주어진 소명이었다. 광일은 언제나 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리고 그러한 광일만의 소임과 역할을 인정받아 나름대로의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혁신적인 회사 경영의 요구
그러나 이전과의 기업 상황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고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에 의해 주식회사 광일의 경쟁력이 밀리게 되었다.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 요구되던 시기였다. 혁신적인 회사 경영이 요구되었다. 늘 탄탄대로를 걸어왔던 광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새로운 길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시기도 있었고,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가야 하는 시기도 있었다.
무로부터 시작된 광일의 역사가 언제 다시 무로 돌아가게 될지 아무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그때 이만영 회장은 제2의 창업을 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한 위기의식은 창립 22주년을 맞이한 1988년 4월 1일자 기념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 경제 전쟁에는 국경이 없고 세계 시장에서 성패가 결판나게 됩니다. 우리 회사도 작년에 20여 년간 제조하던 칼슘 에스 제품이 외국산 제품 때문에 가격 경쟁에서 밀려나 많은 타격을 받아 현재 진퇴양난에 놓여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외국산 제품들이 홍수와 같이 밀려들어올 때 국내 기업체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속수무책입니다. 우리나라가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회 각계가 비상한 각오로 경쟁력을 높이고 총력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국제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제 한국 기업도 세계 유수한 선진국 같이 기술개발, 품질향상에 역점을 두고 신용과 품질에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정봉덕 장로
<염천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