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삼손 신드롬 (1) – 경계선 <사사기 1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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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am David”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자유를 찾아서(1925)”라는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스탈린의 독재 아래 불가리아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가는 ‘데이빗’이란 아이가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12살인 데이빗은 태어나서부터 온갖 경계선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런 그에게 친구이자 스승인 ‘요하네스’는 나침반과 빵 몇 조각, 비밀문서를 주면서 수용소에서 데이빗의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탈출하게 도와줍니다. 그러나 그는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마음과 정신은 경계선에 묶여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자유와 억압의 경계선상에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 곧 그랜츠갱어(Grenzgange)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많은 경계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태어나 작은 상자 같은 요람의 경계에서부터 시작하여 성장해가면서 먹는 것과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에 경계를 규정합니다. 청소년과 성인이 되어 경계선의 변화는 있을지라도 그 경계선들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경계선은 자신을 보호하고 안정감을 얻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분명한 목적을 가지시고 우리에게 경계선을 주십니다.

삼손은 태어나기 전부터 ‘나실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경계선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실인은  “거룩하게 되는” 또는 “분리된”이란 뜻의 히브리어 ‘나지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삼손에게 부여된 나실인으로서의 경계선은 ‘술 마시지 말며, 부정한 것을 먹지 않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서원하여 나실인이 된 사람은 30일, 60일 등 정한 기간이 끝나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나실인이 된 삼손은 죽는 날까지 나실인으로 있어야 했습니다. 30일도 60일도 아니고 평생이라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하나님은 삼손에게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을 주셨을까요? 삼손이 살던 시대는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보다 블레셋을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블레셋이 강하여 이스라엘을 지배했을까요? 이스라엘의 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그들을 블레셋에 넘겼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사고가 정지된 것처럼 하나님이 블레셋보다 강하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정한 강함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그들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기 시작하시려고 삼손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경계선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구원할 삼손의 강한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머리카락인가요? 삼손은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삼손은 맛있는 꿀 때문에 죽은 사자의 사체를 만졌고, 이방 여인들과 잔치를 즐기며 술을 마시면서 오직 머리카락에 대한 계명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의 힘의 근원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이었습니다. 삼손은 여호와의 영이 임하는 상황 속에서도 필요에 따라 경계를 넘나드는 경계인이었던 것입니다. 삼손의 이름은 ‘태양’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경계선 밖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경계 안으로 인도하기 위해 사사를 세우셨습니다. 삼손은 그런 ‘태양’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삼손이 경계선 밖으로 나갈 때, 혹은 경계선 밖에서 그 힘을 드러내고자 할 때 끝내 눈을 뽑히고 놋줄에 묶여 맷돌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태양과 같아야 할 강한 사람이 경계선 밖에서 정체성을 잃고 그 빛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얼마전 한 분이 저를 보고 반갑게 달려왔습니다. 예전에 아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만나자 마자 아주 오래 전 기도원에 함께 갔었던 이야기를 신나게 하면서 갑자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과거를 이야기하다 지금의 자신을 돌아본 것입니다.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현재 하나님의 경계선 밖으로 너무 많이 나와 있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말씀의 경계선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그 경계를 편의대로 허물고 있지 않는지 깨닫고, 그 안에 거하길 기뻐하는 우리가 되길 축원합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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