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계절이 곧 돌아온다. 전국장로회연합회 수석부회회장 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가을에 선거가 있게 된다. 총회 부총회장 선거와 노회 부노회장 선거도 있게 된다. 우리 장로교 전통에서 선거는 하나님의 섭리를 구현하는 통로다. 하나님의 섭리란 모든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뜻대로 된다는 것을 말한다. 풍년, 흉년, 자연재해, 심지어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다. 그래서 모든 선거 결과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 가운데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는가? 선거는 분명 인간이 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가 구현된다고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선거에 대한 신학적 이해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 행위와 연결한 것은 계몽주의자들이었다. 가령 시장의 원리를 설명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보자.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자나 물건을 사는 자 모두 자신에게 이익이 되도록 행동한다. 파는 자는 비싸게 팔고, 사는 자는 싸게 사길 원한다. 이렇게 공급자와 수요자의 이해는 충돌한다. 이 충돌 가운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급과 수요가 만나는 점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유명한 시장원리다. 이렇게 시장의 원리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하는 방식을 세속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 원리는 선거에도 설명될 수 있다. 선거에서 모든 유권자는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후보자에게 투표한다. 그러나 투표 결과 선출된 후보자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그 공동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선출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즉 하나님의 섭리가 여기서도 작동한다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래서 선거는 인간이 하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된다. 이 믿음이 없으면 선거제도는 존속될 수 없다.
그런데 시장원리나 선거제도에서 반드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시장의 거래나 선거가 공정한 경쟁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다. 담합이나 뒷거래가 있으면 시장원리는 작동하지 않는다. 또 금권선거, 흑색선전, 동원선거 등 불공정한 행위가 개입되면 선거제도도 바르게 작동되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 가운데 모든 참여자들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선거해야 한다. 이 전제가 없으면 안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하는 신학적인 근거다.
칼빈은 플라톤의 영향으로 귀족이 통치하는 정치제도를 선호했다. 칼빈은 회중의 대표로 장로를 선출하고 이들이 정책 결정과 치리를 담당하는 것을 장로교 정치 원리로 정했다. 칼빈은 어려서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귀족들의 삶을 살필 기회를 가졌다. 어려서 각종 고전어는 물론 고상한 품성에 대한 엄격한 훈련을 받은 귀족이 공동체를 이끄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의 유명한 말 “보다 나은 자의 통치를 거부한다면 자신보다 열등한 자에게 통치당하는 벌을 받게 될 것”이 연상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교회의 대표를 뽑는 선거는 하나님의 섭리를 구현하는 일에 참여한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 누가 더 나은 후보인지 외부의 압력 없이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외부의 압력 없이.” 칸트가 설명한 계몽주의의 모토다. 칸트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성숙을 계몽주의의 전제라고 설파했다. 외부에서 오는 압력 즉 금권, 패거리주의, 지역주의는 비성숙한 모습이다. 봉건적인 사고다. 이를 타파해야 한다. 이제 유권자는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도구가 된 심정으로 신중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기억하자. 선거에서 보다 나은 후보를 뽑지 않으면 자신보다 훨씬 못한 자가 대표가 되는 황당한 경우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외부의 간섭(부정선거행위) 없이 주체적으로 투표하는 행위야 말로 하나님의 섭리에 봉사하는 길이라고.
구춘서 목사
<한일장신대 전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