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왕의 뒤를 이은 솔로몬은 행운아였다. 왕위 계승 서열에서 제일 말석에 있던 그가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른 것이다. 왕으로서 솔로몬의 평가를 뒤로 하고, 그는 무엇보다도 이재에 특출한 재능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척박한 땅 이스라엘이 부강해지는 길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발상을 했다. 그것은 해상무역이었다. 배를 만들어 본 경험도 없고, 항해술이라고는 전혀 문외한이었던 이스라엘에서 해상무역을 생각해냈다는 것은 솔로몬의 천재적 발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먼저 솔로몬은 이스라엘 땅의 최남단 엘랏(왕상 9:26에는 엘롯) 근처에 홍해로 나가는 항구도시를 건설했다. 그리고 두로(=페니키아, 오늘날 레바논)의 도움을 받아 배를 만들고, 항해술을 배워 홍해로 진출하여 국제무역을 시작했다. 솔로몬이 더 넓은 지중해로 진출하지 않고 홍해로 진출한 이유는, 지중해 해상권은 ‘두로’가 이미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쟁이 없는 홍해로 진출한 것이다.
홍해를 무대로 한 국제무역은 솔로몬 왕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다. “(솔로몬 왕의 배들이)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420달란트(약 14톤. 1달란트 = 약 34kg)를 얻고,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왔더라.” (왕상 9:28) 또한 솔로몬의 세입금의 무게는 금 660달란트(약 22톤)나 되었고, 무역선들은 3년에 한 번씩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솔로몬에게 가져왔다고 했다. (10:14-15) 믿기 어려운 정도의 부가 솔로몬 왕실로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은 중개무역까지 했다. 즉 군마(軍馬)를 많이 생산하는 애굽에서 말을 사서 이들을 ‘헷’(=힛타이트) 왕들과 아람(=오늘날 시리아) 왕들에게 팔아서 막대한 이익을 내기도 했다. (10:25-26) 그 결과 솔로몬의 재산은 세상의 어느 왕보다 크게 되었다고 했다. (10:23) 이 말은 고대 왕에 대한 과장법적 표현일 수도 있지만, 솔로몬이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솔로몬이 앉는 보좌는 상아로 만들고 그 위에 정금을 씌운 ‘황금보좌’였고, 왕궁에서 쓰는 집기는 모두 정금으로 만든 것만 사용했다. 또한 금 방패 500개를 만들어 왕궁에 진열해 놓았다. 대단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같이 흔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10:16-29)
솔로몬 왕의 늘어나는 부와 함께 그의 국제적 위상도 날로 높아졌다. 솔로몬은 당시 대제국 애굽과 왕실관계를 맺고 바로의 딸(=애굽 공주)과 결혼까지 했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주변의 모든 나라들, 모압, 암몬, 에돔, 시돈, 헷(=힛타이트) 등과 왕실결혼을 하며 교류했다. (11:1) 솔로몬의 부와 지혜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시바의 여왕은 예루살렘을 친선방문하기까지 했다.
솔로몬 왕이 여러 나라들과 왕실교류를 하면서, 고대 근동 지역의 왕실 관리 학교를 중심으로 발전해 온 지혜운동과 지혜문학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솔로몬 왕 자신이 뛰어난 학식과 지식을 갖춘 ‘지혜인’이 되었다. 이렇게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지혜운동’의 창시자요 그 자신이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지혜인’이 되어 ‘지혜의 왕’의 대명사가 되었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