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7장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서 다윗이 가진 무기란 막대기와 돌멩이가 전부였다. 반면 골리앗은 몸이 거구인데다 갑옷과 투구를 갖추었고 긴 창과 날카로운 칼까지 지니고 있었다. 다윗에게도 갑옷과 칼이 주어지긴 하였지만 다윗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갑옷과 투구를 벗어버리고 칼자루도 내려놓았다. 그는 오직 막대기와 시냇가의 돌멩이 다섯 개만을 가지고 골리앗에게 나섰다. 결과는 다윗이 이겼다. 보잘 것 없는 무기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이다. 문제는 무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는 무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갑옷과 칼과 방패를 가졌는가에 관심을 쏟는다. 그래서 보여지는 것을 위하여 인생을 살아간다. 남보다 더 강한 무기와 갑옷으로 자신을 포장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하고 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돈이 많아야 하고 권력을 소유하여야 더 큰 사역을 할 수 있다는 논리를 이야기한다. 이는 과연 성서적인 것인가?
나도 골리앗과 같은 갑옷을 입고 길고 날카로운 칼과 창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야 전쟁터와 같은 선교의 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치열한 목회 현장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더 강하고 세련된 무기들로 치장하고 그것들로 나를 지키고 싶었다. 그래야 버젓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도 약해 보이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비교하면 망한다. 비교하는 순간 열등감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자신감이 줄어들고 다른 사람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니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다. 나는 시력을 잃었고 다른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미미한 목회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를 괴롭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처럼 강해지고 싶은 욕망이다. 골리앗의 갑옷과 칼과 방패를 소유하고 싶은 것이다. 과연 골리앗처럼 무장하면 나는 골리앗이 되는 것인가? 나 자신은 골리앗처럼 무장하려 하면서 다윗의 이야기를 하는 이 모순의 삶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다윗처럼 살려면 막대기와 돌멩이만 있어도 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처럼 살고 싶다면 그처럼 자유롭게 벗어버리고 막대기와 돌멩이만으로 싸워야 한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믿음의 힘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이야기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믿음의 결과가 아니라 보잘것없는 인생도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의 힘을 가르쳐 준다. 욕망으로 뭉쳐진 자아를 해체하는 것이 자유를 향한 결단이다. 골리앗처럼 무겁게 자신을 치장하고 강한 무기를 갖는 것에 집착하려는 삶은 어리석은 부자와 다름 없다.
가난한 자유인으로 사는 것이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이다. 무거운 갑옷을 벗어 던지고 칼자루를 내려놓은 채 막대기와 돌멩이로 자유롭게 세상과 맞섰던 다윗이 부럽다.
유해근 목사
<(사)나섬공동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