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섬기면서 가슴에 담고 있는 교훈 같은 문장이 있다. “어린 아이와도 다투지 마세요.”
서른 아홉의 6월, 곡성 옥과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열정은 차고 넘쳤지만 실수투성이의 하루하루를 걷고 있을 때 주일 저녁 남선교회 헌신예배를 맞이해서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 목사님을 강사로 초청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목사님! 선배 목사님으로서 후배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교훈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그때 목사님은 “어린 아이와도 다투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이 가르침은 내 평생의 교훈이 되었다.
세상에, 사모님과 다투지 마세요, 장로님들과 다투지 마세요. 이런 소리는 들어봤어도 어린 아이와도 다투지 말라니. 교회는 수십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남녀노소 떼를 지어 다니는 곳이 아니던가. 억울한 감정을 풀겠다고 달려드는 사람, 이것이 아니면 교회를 옮기겠다며 협박하며 고집부리는 사람. 세상의 성씨보다도 더 많은 성격을 가진 공동체가 바로 교회인데 어찌 어린 아이와도 다투지 말라고 하시는가?
그 후에도 나의 목회는 좌충우돌의 시간들이 참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그 선배 목사님의 가르침이 내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교회와 세상은 왜 이리도 화목하기가 힘든 것일까? 암에 걸려서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게 된 어느 목사님은 목회하면서 마음에 생채기가 남아 있는 성도들을 찾아다니며 또는 병원으로 초청을 해서 마음의 무거운 빚을 갚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살 날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교만한 생각이 우리의 화해와 용서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교회의 부흥은 싸우지만 않으면 됩니다.”라고 말씀하신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박영희 시인의 ‘접기로 한다’를 소개하며 글을 마감합니다.
접기로 한다 / 박영희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 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어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 5:18)
최정원 목사
<광주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