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근 서울 근교에 작은 텃밭을 마련하여 전원생활을 준비하고 있는데, 요즘은 어느 정도 거처가 마련되어 며칠씩 지내곤 한다. 서울 도심 아파트에서 살면서 전원생활을 꿈꾼지 30여 년 만에 누리는 작은 사치가 아닐까 한다.
이곳 시골에 와서 맞이한 첫날의 감동은 너무나 강렬해서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만 같다. 울창한 숲을 뒤편으로 하고 앞에도 온통 나무와 각종의 풀과 꽃으로 둘러싸여 자연 속에 파묻혀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작은 중정 뜰에는 어디에서 왔는지 작은 개구리가 이리저리 튀는 모습이 앙증맞기도 하다. 새소리 풀벌레 소리가 마음을 가득 채운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이 도시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지고 온갖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자연을 이렇게 가깝게 느껴보는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이후 처음일 것 같다.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도심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밤에도 대낮같이 밝은 가로등과 상가의 불빛에 익숙해져 있는 도시인들에게 시골의 밤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저 멀리 보이는 농가의 작은 불빛 외에는 사위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덮이고 어두컴컴한 숲에서는 무언가 불쑥 튀어나올 것 같기만 하다. 자연은 평온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어느새 사라지고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런데 그 캄캄한 세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또 다른 반전이 일어난다. 수많은 별빛으로 가득한 밤하늘이 우리를 다시 평온함과 따스함으로 밤새 수많은 상념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다. 이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지구상에 이렇게 다양한 생명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리고 이 세상을 바라보며 온갖 질문을 하는 나는 누구인가?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현대과학은 참으로 많은 것을 밝혀냈다. 이 세상은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시작되었으며 약 45억 년 전 태양계와 지구가 생성되고 그 후 10억 년쯤 지나서 단세포 생명체가 나타났으며 수십억 년의 장구한 세월의 진화 끝에 지구상에 지금과 같은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물리학자들이 밝혀낸 중요한 사실 하나가 우리 시선을 끈다. 뉴턴의 중력 법칙과 같이 이 우주를 지배하는 몇 가지의 기본 법칙이 존재하는데 그 법칙들은 대개 상수들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빛의 속도는 초속 299,792,458m이다. 또 중력의 세기를 결정하는 중력 상수는라고 한다. 만약 이 숫자가 지극히 미세하게라도 달라졌다면 이 우주에는 탄소가 생성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러면 생명은 존재하지 않고 우리 인류도 출현하지 못했으리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우주에서는 처음부터 생명과 인류가 탄생할 수 있도록 기본 상수가 특별한 값으로 미세조정이 되어 있었다고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과학자들은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 상수들을 미리 조정해 놓은 어떤 주체가 존재해야 한다는 신학적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 모든 가능한 상수를 포함하는 다중우주가 동시에 존재할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이 우주와 생명의 신비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더 커지고 뚜렷해진다는 사실을 뉴턴이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한결같이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의 신비 앞에서는 첨단과학조차도 겸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완진 장로
• 서울대 명예교수
• 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