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서서히 끝나가면서 요란하게 울어대는 매미의 생애를 떠올려 봅니다. 입추(立秋) 절기가 지나면서 매미는 더 정열적으로 “맴~맴~”하고 울어댑니다. 빨리 짝을 만나 지상에서의 사랑을 나누고 멀리 떠나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매미는 생애의 99%를 땅 밑에서 애벌레로 살다가 지상으로 나와 허물을 벗고 나서 겨우 4주 동안 살며 짝짓기에 집중합니다. 수컷의 우렁찬 울음소리는 암컷을 향한 ‘사랑의 노래’라고 하지요. 수컷끼리 경쟁이 심해서 수컷 매미들이 연주하는 음악회는 마치 오디션을 방불케 합니다. 이 우렁찬 소리는 매미의 복부 진동막을 울리면서 나오는 소리인데 이는 ‘북소리 원리’와 같다고 합니다. 열대야에다가 야간에도 환한 조명 탓으로 수컷 매미들은 밤에도 고성방가(高聲放歌)를 불러댑니다.
이렇듯 매미의 일생은 꼭 한 달 동안입니다. 아니, 실제로는 매미의 생명은 7년간이나 이어지는데 땅속에서 평균 83개월을 지내고 지상에서 1개월 남짓 사니까요. 애벌레 시절에는 나무아래 땅 속에서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낸 뒤, 땅 위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생애의 99%가 미성년의 시기인 셈입니다. 애벌레는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 가지나 잎 뒤에 붙은 채 2~3시간 허물을 벗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어른벌레’ 곧 ‘성충(成蟲)’이 됩니다.
어른이 되고 난 다음에는 대부분 짝을 찾는 데 시간을 보냅니다. 짝짓기 이후, 암컷은 나무껍질 속에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합니다. 그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지요. 결과적으로 매미는 암수 모두 새끼를 보지 못하고 죽으니 슬프고도 안타까운 일생이라 하겠습니다.
짝을 찾는 과정의 비밀은 ‘소리’에 있습니다. 소리는 수컷만 냅니다. 소리가 목청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배에서 생성됩니다. 수컷의 배에는 여러 겹으로 주름진 진동막과 소리를 울리는 공명실이 있다고 합니다. 진동막은 하얀 갈빗대처럼 생겼는데 여기에 연결된 발성근육을 길게 당겼다 놓으며 공명실을 울리는 것입니다. 생물학자들은 이를 ‘북소리 원리’로 설명합니다. 북을 치면 팽팽한 가죽이 진동하며 텅 빈 공간을 소리로 가득 채웁니다. 북이 크고 내부 공간이 넓을수록 북소리가 크듯이 매미도 그 자체의 공명실이 넓을수록 소리가 커집니다. 몸집이 큰 매미의 소리가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사는 매미는 13종류인데 이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큰 품종은 ‘말매미’입니다. 몸길이 4~5㎝에 날개 길이가 6~7㎝나 됩니다. 소리도 그만큼 크고 다른 수컷들과 경쟁하기 위해 최대한 힘껏 소리를 냅니다. 최대 음역이 80데시벨(dB)을 넘는다고 하니 이를테면 진공청소기나 믹서기 소음보다 높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대형 트럭과 맞먹는 정도랍니다.
매미가 내는 소리가 워낙 커서 자신의 청각이 상할 수도 있지만 다행히도 매미에게는 이를 막는 방음장치를 갖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한창 소리를 낼 때는 다른 소리를 못 듣는답니다. 근처에서 축포용 대포를 쏘는데도 끄떡없었다는 연구보고가 있습니다.
한 편, 암컷매미는 공명실이 산란기관(産卵器官)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소리를 내지 못하고 듣기만 합니다. 암컷을 위해 내는 수컷의 소리는 사실은 ‘울음’이 아니라 ‘노래’가 맞습니다. 암컷의 고막은 수컷이 내는 소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구성돼 있어서 사랑의 ‘세레나데’가 들려오면 그쪽으로 가까이 가서 앉고, 암수가 눈빛을 주고받은 뒤 짝짓기가 시작됩니다.
매미의 일생을 들여다보면서 인간의 일생을 생각해 봅니다. 인간의 생애도 영원한 시간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일 뿐입니다. 성경(약4:14)에는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평소에 우리는 여기에 나오는 성경말씀의 참뜻을 얼른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과는 무관한 것처럼 살다가 생명이 다할 때쯤 되어서야 말씀의 진리성을 깨닫게 되지요. 물론 하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다르겠지만 영원을 지향하며, 약속의 땅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같아도 그 인생의 디자인(도안/설계)과 포맷(모양/형식)이 다르고 인생의 목적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라 여겨집니다. 오늘하루도 우리의 삶이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