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중국선교를 시작한 지가 벌써 24년이 되었다. 초창기 중국선교에 참여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었다. 중국기독교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중국선교에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중국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름대로 중국기독교를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필자가 파악한 몇 가지 중국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한 팁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우선 역사적 맥락이다. 중국기독교의 역사는 무려 1400년을 자랑한다. 이 긴 기간 동안 놀랍게도 세 차례 중국에 기독교가 전파되었다가 소멸되는 일이 있었다. 635년 경교라는 이름으로 네스토리우스파 선교사들이 들어와 기독교를 전파했다. 당나라 시절 고위층을 중심으로 널리 전파되다가 845년 당무종의 박해로 중국에서 기독교가 첫 번째 소멸되었다. 그후 원나라 시절 프란체스코 선교사들이 들어와 기독교를 전파했는데 백성들 사이에 널리 전파되지 못했다. 그러다 약 150년 만에 두 번째로 소멸되었다. 그리고 명나라 말기에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에 와서 기독교를 전파했다. 이때 마태오리치가 크게 활약했다. 그러나 청왕조 때인 1724년 전례논쟁에 대한 황제의 칙령으로 모든 선교사들이 추방되며 세 번째 소멸되었다. 현재 중국기독교 지도자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잘 알기에 또 다시 이런 일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며 조심하고 있다.
다음으로 중국화의 압박이다. 중국은 중화사상의 나라이다. 중화사상이란 ‘중(中)’은 중앙이라는 뜻이고, ‘화(華)’란 문화라는 뜻으로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면서 가장 우월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일종의 선민사상이다. 이것은 중화 이외에는 오랑캐 즉 이적(夷狄)이라 하여 천시하고 배척한다는 뜻에서 화이사상(華夷思想)이라고도 한다. 이런 중화사상 때문에 밖에서 들어온 정신문화나 종교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모든 사상과 종교를 중국화하는 작업을 한 뒤에 받아들인다. 불교와 이슬람교가 이미 중국화 작업이 끝이 났다. 그래서 내부에서 자생한 도교와 중국화된 불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자기들 민족종교로 인정한다. 그러나 기독교와 천주교는 아직도 외래종교로 구분한다. 그리고 이 두 종교에 대해 중국화의 압박이 거세다. 현재 중국기독교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주관심사가 바로 기독교의 중국화를 달성하여 기독교를 민족 종교화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국가주의의 소용돌이이다. 5세대 지도자인 시진핑이 ‘중국몽(中國夢)’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중국은 새로운 도약을 모색해 왔다. 그동안 덩샤오핑이 추구해 온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는 ‘온포(溫飽)’를 넘어서 보통사람도 잘 사는 ‘소강사회(小康社)’를 추구해왔다. 그러나 시진핑 시대에 소강사회를 달성했다고 보고, 이제 새로운 국가번영의 목표를 내세우게 되었다. 바로 ‘천추의 위업’인 중화민족의 부상 즉 과거 당나라 시절의 번영을 이루려는 중국몽이다. 그런데 시진핑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사상과 제도를 도입했다. 바로 중국식 국가주의이다. 여기서 국가주의(statism)란 국가와 그 구성원 사이의 수직적, 유기체적, 권위주의적 관계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는 개념이다. 이제 중국에는 본격적으로 국가주의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국가통합과 안정을 해칠 수 있는 것들을 막기 위해 국가권력의 통제가 강화됐다. 그러면서 자유와 민주, 인권 등의 보편가치는 부차적이 되었고, 종교와 언론과 문화는 국가주의의 소용돌이 속에 큰 위기를 겪게 된 것이다. 지금 중국기독교 지도자들은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숨죽이며 생존과 위기 극복을 위한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중국기독교는 오늘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상황 가운데 놓여 있다. 문화혁명의 암흑기를 지나 개혁개방의 도약기를 맞았었지만 다시 어둠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중국기독교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고, 지혜롭게 도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박봉수 목사
<상도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