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에 유럽사회에서 교황의 권한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정도로 무한대로 크고 교황청의 위엄은 성경을 능가할 정도의 커다란 위력을 발휘했다. 절대 권력은 반드시 패망한다는 말은 당연히 여기에도 해당되어 하늘을 가리는 엄청난 권력을 지녀온 교황청의 부패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에 충분하였다. 이때 마르틴 루터가 이러한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였다. 물론 그 당시에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당연하게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엄청난 모험이었고, 또한 이런 엄청난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기에는 말할 수 없는 용기와 더불어 진정한 믿음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담대하게 성경말씀만을 따라 굳센 믿음만을 가슴에 새기고, 그 원칙을 준행하기 위하여 목숨을 건 ‘의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결론적으로 말해 승리했다.
예전에 그렇게 많았던 신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성전을 아름답게 쌓고 거룩하게 유지하였던 곳이 교회였다. 그러나 현재 미국이나 유럽에는 허울 좋은 껍데기만 남아서 심지어는 관광객을 유치함으로 교회를 유지하기도 하는 서글픈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거기에 교회의 부흥을 표현하는 잣대로 ‘교인 수가 얼마냐? 혹은 교회당이 얼마나 크고 화려한가?’라며 외부적인 것으로 가늠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어디에서부터 그리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냉정하게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당연하게 이런 대형교회들이 점점 그 옛날의 영화를 잃어버리고 있다. 예전에는 믿음의 선배들이 열심히 전도하여 함께 모이기 힘썼고, 교회를 부흥시켜 사회의 등불이 되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선구자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였던 아름다운 교회가, 지금은 쇠퇴하여 모이는 신도가 줄어들고 특별히 내일의 교회를 받들어 나갈 젊은이들이 줄어들어 이제는 교회 안에 활기가 없어지고 낙후되어가는 현실을 바라보며, 과연 이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가 딜레마가 되고 있다.
이제는 새롭게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살려 볼 때다. 교회의 의미는 겉으로 보이는 건물과 교회를 구성하는 신도의 숫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구성하는 신도들의 진정한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걱정스럽게도 지금은 교계가 많은 시험에 들어 있다. 이러다가 제2의 종교개혁이라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너나없이 모두가 회개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교회,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잘 하였도다’라고 칭찬 받을 수 있는 교회를 만들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모두가 진정으로 회개하여 참된 종으로 돌아가, 초대교회의 참신한 신앙생활을 몸소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올곧은 제자가 되어, 믿는 성도는 물론 믿지 않는 사람까지 함께 감동받아 순응하는 교인들이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계기를 마련함으로, 이를 감사하며 기억하는 종교개혁주일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우리 모두가 방황하지만 이제 곧 병마와의 싸움이 그치고 옛날의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그 전에 우리 모두가 변화하여 새사람이 되어 5백여 년 전에 일어났던 전쟁하며 일으켰던 개혁이 아니라 먼저 나 스스로가 반성하고 남을 포용하면서 한발 더 나아가 나를 부인하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결국에는 승리할 수 있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일으키는 참다운 종교개혁을 이루어 나가는 그런 기념일이 되기를 소망한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