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라와 교회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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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전 이 땅에 전해진 복음은 이 민족을 샤머니즘과 문맹에서 예수를 통한 영원한 구원과 새 삶의 기쁨과 용기를 얻어 가정을 일으키고 여성을 해방시키며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선교를 위한 병원을 세우며 급기야는 내 나라를 찾은 독립운동에, 나라 빚 갚는 운동을 벌이면서 수많은 순교의 피를 흘렸다. 1970~1980년대에는 세계에 유례를 찾기 힘든 부흥과 성장을 맞이하며 골목마다 높은 빌딩에는 십자가의 조명으로 환히 비추었다. 세계 선교에 나선 한국교회는 3만여 명의 선교사를 180여 나라에 파송하는 선교대국이 되었다. 수많은 신학교와 거기에서 배출되는 수천 명의 사역자들이 매년 교회로 사회로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왜 교회가 위기를 만났다고 하는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국교회는 위기를 맞았다. 오히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라를 걱정한다. 교인들은 나라도 걱정하지만 교회도 걱정한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걱정을 넘어 위기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굶주리고 헐벗던 나라가 세계에서 잘 사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였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성공한 개도국들의 모범이 되었으며, 올림픽을 비롯하여 수많은 세계적 대회와 국제회의를 유치하며, 동남아 사람들이 비자받기 제일 어려운 나라가 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미국을 혈맹으로 하고 있는 나라인데 왜 백성은 평안하지 않고 스스로 위기라 하며 두려워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가. 내적으로 서로의 불신과 소통의 부재로 일어나는 갈등과 미래의 불확신과 국가 발전의 방향에 대한 불안감이, 가져도 먹어도 의미를 상실하고 행복의 선택에 두려워하는 구원의 호소요 살려는 애절한 몸부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러한 생각과 요청은 포기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정신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위드 코로나 시대 교회가 살아나면 나라도 살아난다. 희망을 줄 수 있다.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신‧불신 간 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신자이기에 사회와 나라에 책임과 권리를 외면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왜 교회가 사회에 대한 책임과 영향을 그토록 크게 보는가. 언제 사회가 교회에 책임을 전가한 적이 있는가? 나라의 발전과 쇠퇴를 기독교에 물어온 적이 있는가 말이다. 

그런데 왜 교회가 살면 나라가 사는가? 공동의 사회에서 그 사회를 이끌어 가는 엘리트에 의하여 그 공동체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의 참뜻은 교회의 본질에서 나온 말이다. 교회의 존재 이유를 선교에 두고 보면 교회는 사회를 변화시킬 능력을 가졌고 교회는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복음이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본질이 복음이다. 오늘 이 사회의 불신과 갈등 허무와 중독과 분노와 폭력에 아파하고 두려워하는 사회를 치료하고 회복시켜 건강한 나라 참 살기 좋은 나라로 세울 수 있는 것은 복음이다, 교회는 복음의 생명력을 회복해야만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아버지의 집이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분노와 갈등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성도들에게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고 소금과 빛으로 살아야 한다고, 상처에 소금을 치기 전 얼마나 아프냐고 무서우냐고, 허망한 세상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며 인생의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시니 예수님을 믿고 그에게 맡기라고, 당신의 죄가 아무리 커도 하나님의 사랑이 더 넓고 크심을 믿으라는 복음의 능력으로 회복시켜야 한다.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복음의 능력인 하나님의 사랑이 교회를 교회 되게, 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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