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307) 소다 가이치 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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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親韓 派, 親日派의 사이에서 오해와 미움도 받았지만 그를 아는 조선인들은 그를 진실한 기독교인으로 기억하고 복음을 몸으로 전해주기 위해 일본에서 온 선교사로 받아들였기에 소다와 우에노의 묘비를 외국 선교사들의 묘지인 양화진에 세웠다. 

소다와 우에노 부부는 일생을 한국을 위해 바친 외국인 선교사와 그 가족들과 함께 안장되어 있다. 선교사들은 당시 세계의 변방이던 한국에 복음의 빛을 나누기 위해 헌신하였다. 또 이들은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여 우리 사회발전에 기여하였다. 소다 부부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였다. 이때 한국인들에게 감사와 찬사도 받았지만 간사한 일제의 간첩이라는 비방도 감수해야만 했다. 이들은 41년 동안 한국의 불쌍한 고아들을 위해 사랑을 베풀었다. 

소다 가이치 부부의 묘는 양화진 외국인 묘원 언덕 위 제1묘역 ‘자’-8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묘역에는 선교사 게일,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의 묘가 가까이 있다. 서양인들만 묘비를 세우는 양화진에 일본인으로 처음 묘비를 세우게 되었다. 소다 부부는 한국인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러므로 일본은 싫어할지라도 소다 가이치 부부는 한국을 사랑한 사람으로 한국인들은 그들 부부의 시신을 일본으로 보내지 않고 한국 땅에 묻는 것을 기뻐하였다. 그의 묘 옆에는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가 함께 피어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이름 없는 한국인이 소다 가이치에게 내민 돌봄의 손길이 수백 수천 배의 따스한 손길로 더해져 수많은 고아들을 살려냈다. 그는 한국 고아의 慈父였다. 사랑 慈, 아비 父 자애로운 아버지 핏줄로 이어진 자식에게 잘 대해 주는 것은 古今東西의 진리이다. 하지만 전혀 가족관계가 아닌 데도 불구하고 慈父라 불리는 일본인 소다 가이치 부부는 훌륭한 아버지요 어머니였다. 

소다 가이치의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에서 왔다. 소다는 세 사람의 천사를 만났다. 무명의 한국인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는 예수님의 사랑인 줄 몰랐다. 그러나 그때 그 한국인은 예수님이 보내주신 무명의 천사였다. 두 번째는 이상재 선생이다. 그를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분이 자기를 사랑하라고 보낸 천사였다고 믿었다. 이상재 선생은 예수를 믿게 했으며 예수를 본받게 했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에게 보여주시는 계시이다. 마지막으로 우에노 다끼를 만나 결혼했고, 그를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되었다. 소다 가이치는 이 세 사람을 통해 소다를 부활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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